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대담/ 정숙자 : 한정원

검지 정숙자 2018. 12. 3. 03:16

 

 

  『미래시학』2018-겨울호 <특집 1/ 중견 시인과의 산책/ 대담자 : 정숙자(시인)  한정원(시인)

 

 

    "외로움이 두려우면 정의로울 수 없다"

      -정숙자 시인

 

     Interviewee : 정숙자  Interviewer : 한정원

 

 

  그동안 e-Interview로 연재되었던 대담 코너를 이번 호부터 <중견 시인과의 산책>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선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 계절의 화제가 되었거나 관심을 받는 시인을 만나 대담하는 페이지입니다. 이번 겨울호에서는 지난 5월 '질마재 문학상'을 수상한 정숙자 시인을 만나봅니다.

 

 

  한 :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래 전부터 계획했던 인터뷰를 이제야 하게 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 클리셰한 질문부터 드리겠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근황 좀 말씀해주시죠. 지난여름은 1세기 만에 찾아온 폭염으로 지구가 뜨거웠습니다. 문득, 선생님께서 더위를 피하고 에너지 절약을 위한 한 가지 비책을 알려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소위 ‘동굴 효과’요. 혹시 겨울을 위한 생활 비법도 있는지 궁금하군요.

 

  정 : 워낙 바쁘다보니 늙는 줄도 모르고, 아플 틈도 없고, 외로움 슬픔 따위의 감상이 끼어들 여지도 없습니다. 사놓은 책이 펼쳐보지도 못한 채 쌓여가지만, 부쳐온 책 읽고 회답하기/잡지 읽고 블로그 운영하기 또한 독서에 못지않은 가치와 보람이 있다고 여기며 강행군 중이에요. 현장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시인 평론가들의 개성과 시 자체의 흐름이 거의 한눈에 보입니다. 현장을 모른다면 자신의 현위치는 물론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기도 어렵겠지요. 시세계의 유속이란 그야말로 급류입니다. 그에 따라 촌음도 수수방관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의 뇌 영역일 것입니다.

  겨울나기 역시 '동굴 효과'에 기대려 합니다. 문을 꼭꼭 닫고 지내려고요. 이 아파트는 지은 지 오래된 건물이라 중앙 공급식 난방이에요. 스팀을 넣어주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이 집은 갓집이고 배관들이 제 기능을 못해서요. 여름에는 외부 공기 차단하느라 문을 닫고 살았는데, 이번 겨울에도 그러려고요. 군인들은 극기 훈련도 하는데 이 정도 견디는 건 별일도 아니죠. 의지의 문제라고나 할까요. 어린 시절 고향에선 창호지 문 한 겹으로도 겨울을 났는걸요. 

 

  한 : 지난 5월 ‘질마재 문학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더 축하드립니다. 미당의 제자로 그 상을 받으신 것은 더 의미가 있고 남다른 감회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날 시상식장에서 피력하신 수상소감은 매우 특별했습니다. 현장성과 독특한 배경이 있는 이야기로 참석자들에게 신선한 분위기와 감흥을 주셨습니다. 아직 그 여운이 남아있으리라고 믿고 ‘질마재 문학상’의 의의에 대해 말씀해주시고 무대에서 못하신 소감이 있다면 부언해주시죠.

  

  정 : 축하의 말씀, 저 역시 거듭 고맙습니다. 그런데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전화를 받은 그날부터 시상식 무대에서의 수상소감이 큰 걱정이었습니다. 울게 될까 봐서요. 매일 안 우는 연습을 했습니다. 수상소감이라는 게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언급하기 마련인데, 그 과거라는 것을 열어보면 노력과 눈물밖에 고인 게 없거든요. 그날은 울지 않는 게 목표였어요. 그래서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일화를 준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질마재 문학상’은, 저에게는 그 어떤 상보다도 은혜롭고 마음 벅찬 영예입니다. 등단 30년 만에 스승의 이름으로 다시 한 번 제자가 되는 기분! 더구나 저로서는 갚을 수 없는 보은의 깊이가 있습니다. 여기서 간략히 말씀드리기엔 어렵지만 몇 군데 특집에서 공개한 기록들(‘미당은 나의 무얼 믿었나’ 등)이 여기저기 흩어져 숨 쉬고 있습니다. 

 

 

    '길-독서가 주는 몰입도는 백 프로' 

 

 

  한 : 선생님의 닉네임이 ‘반포의 칸트 시인’ ‘흰머리 소녀 시인’ 등이 있지요? 닉네임은 다른 사람이 붙여주는 건데 그 적합성은 항상 공감을 갖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산책하시는 시간과 경로가 궁금하고요 얼마나 오랫동안 해오셨는지요. 그리고 산책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과 시간은 언제인지요. 아참 동생께서 ‘검지’라는 닉네임도 붙여주셨죠?

 

  정 : 2010년도에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그때 무릎 관절을 수술하게 되었고, 퇴원 후 처방이 1시간 이상 걷거나 수영하기, 헛자전거 타기였어요. 수영과 헛자전거 타기는 성격상 맞지 않아 걷는 걸 택했습니다. 2011년 1월부터 걸었는데, 매일 같은 길을 그저 걷기만 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길-독서를 착안했죠. 계절에 관계없이 일몰 전 두 시간이고요. 한낮에는 햇빛이 너무 밝아 오히려 눈이 피로하더군요. 그리고 이건 경험칙인데 길-독서는 집중/몰입도가 100%예요. 그게 하루하루의 제 독서량이죠. 속독력도 붙었어요. 길독서가 아니었다면 블로그 운영은 못했을 거예요. 잡지들을 다 볼 수 없었을 테니까요.

  코스는 지하철역 '동작'에서 ‘고속터미널’까지 이어진 오솔길입니다. 자동차는 물론 자전거도 안 다니고 가게도 없어요. 아주 조용하고 한적한 길이죠. 양쪽에 늘어선 나무들이 공기를 걸러주고 새 소리도 들려줍니다. 그 길에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저를 보고 동네 분들이 ‘칸트의 산책’을 연상했을 거예요. 독서에 방해될까봐 인사를 건네지도 않습니다. 산책로도 아름답지만 주민의 ‘마음 씀’은 그 이상인 듯해요. 참으로 고마운 분들입니다.

  ‘흰 머리 소녀’는 늙은이가 문방구나 드나드는 데서 생긴 별칭일 거예요. 여기서 30년 가까이 살다보니 자작일촌처럼 이웃의 성향이 드러나기 마련이죠. 그리고 ‘검지劍智’는 ‘지혜의 칼’이랍니다. 동생이 파동역학을 배우면서 저에게 묻는 거예요. 부자나 명예 등 원하는 게 뭐냐고요. 저는 학문을 원했죠. 그랬더니 뜻뿐 아니라 음도 중요하다면서 지어줬어요. 마음에 들었습니다. 의미도 좋았지만 엄지가 아니라는 게 겸손해서요. 

    

  한 : 지금까지 아홉 권의 시집과 두 권의 산문집을 출간하셨습니다. 1988년 등단 이후 30년이 흘러가는 동안 많은 변모가 있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그동안 작품 세계가 어떻게 변화해왔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또 선생님께서 추구하는 문학 세계와 문학 정신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은 수많은 시인과 평론가가 비평과 감상을 통해서 지면에 발표해왔습니다. 

 

  정 : 저의 초기 시는 자연발생적인 정서를 가다듬은 정도입니다. 릴케 헤세 타고르 셰익스피어 워즈워드 하이네 베를렌느 랭보 등의 영향을 받은 게 전부였으니까요. 제5시집(『감성채집기』1994. 한국문연)에서부터 모더니티에 진입, 그야말로 꾸준히 '검지'를 갈았습니다. 그 후 6‧7‧8시집까지 형태와 문장에 조금씩 변신을 가했고, 드디어 목표에 근접한 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을 출간하게 됐지요. 포스트구조주의의 이론과 실제가 부합하기까지 20여 년이 걸린 셈입니다. '줄탁동시'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 언어가 원래 중국의 민간에서 쓰이던 말인데 '쵀탁동시'가 원음에 더 가깝고 바르다고 합니다. 왜 이 말씀을 꺼내느냐면 바로 '그 순간'에 문학상이 주어졌기 때문이에요.

  그렇다고 제가 여기서 칼 갈기를 멈추는 건 아닙니다. 앞으로도 한밤에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리거든 저의 칼 가는 소리가 아닐까 의심해 보시기 바랍니다. 푸후훗∼. 산문집 두 권은 모두 연재했던 걸 묶은 것입니다. 제 삶과 환경/의식/이성/정서의 배경과 중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남은 한 권은 여기저기 청탁에 의해 쓴 글들을 모을 생각인데 정리할 겨를이 잡히질 않는군요.

 

 

    '돌연변이의 욕망은 저의 예술혼이죠' 

 

 

  한 : 『액체 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은 최근에 출간하신 시집 제목이고 수상하시는데 중요한 자리를 갖게 한 시집이 되겠지요? 두 시의 제목을 쉼표 없이 병행해서 붙이는 방식은 선생님이 처음 시도하신 것이 아닌지요.

  오민석 시인이 “정숙자 언어의 ‘낯설음’은 독자들을 텍스트 바깥으로 자꾸 밀어 낸다. 그것은 마치 브레히트(B.Brecht)의 소외효과처럼 독자들에게 편안한 소비의 경험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정확히 평해주셨습니다. 특별히 「액체계단」작품 구상을 하시게 된 배경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정 :  네, 앞서 말씀하신 '소외효과' 명쾌했습니다. 그리고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이라는 표제는 새로움을 열망한 저의 기획이었습니다. 돌연변이의 욕망이랄까요? 그게 결국 예술혼이기도 하고요. 그 염원은 이번 시집 속 「굿모닝 천 년」에도 피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액체계단」의 배경은 또 한 편의 '공무도하가'라고 봅니다. 술, 계단, 실족, 죽음… 남편이 건너간 강이 바로 계단 아래 흐르고 있었던 것이죠. 이런 비극 끝에 모처럼의 작품이 빚어지다니! 어찌, 감히, 더 이상의 문학적 행운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전 생애를 쓸어 넣은 외길의 결과가 이런 싱크홀에서 확인되다니! 그런데 이게 진짜 예술작품이라고 느껴지는 건 또 무슨 미친 넋이란 말입니까. 

      

  한 : 장석원 시인은 “정숙자의 시는 모던 메탈(modern metal)이다. 뼈로 감지하는 뜨거운 음악이다.”라고 해설한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시 「풍크툼 풍크툼」을 몇 년 전에 읽었을 때 그 긍정적 충격은 대단했고 선생님의 끊임없이 발견하고 탐구하는 작가로서의 자세에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혹시 가장 영향을 준 작가가 있다면 누구인지요.(이 질문도 상투적이지만 어쩔 수 없네요)

 

  정 : 그 글을 받아 읽고, 저는 이렇게 전화했습니다. "제가 여태 꿋꿋하게 서 있었던 건 내면에 가득 찬 얼음 때문이었는데, 이렇게 녹여버리면 어떡해요. 빨리 살려내요. 내 얼음 살려내요"라고. 고맙다고 해야 될 것을. 안에서 녹은 그 물은 진실로 북극의 눈-물이었던 것입니다. 그 여운으로 쓴 「북극형 인간」을 발표(『시와정신』2018-가을호)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정녕// 햇빛을, 봄을 기다리지. 죽을 때 죽더라도/ 단 한 번 가슴속 얼음을 녹이고 싶지"라고요.

   소녀 때부터 단계적으로 영향을 받아왔기 때문에 누구 한 사람을 지목하기는 어렵습니다. 주지적 충격파는 청마 유치환이었고, 주정적 충격은 미당 서정주였고, 돌발적 충격은 이상 김해경이었고, 이성적 충격은 칸트였고, 이지적 충격은 니체였고, 의식적 충격은 프로이트였고, 사색적 충격은 보들레르와 보르헤스와 아쿠타가와였고…. 이루, 이루,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문호들의 영향을 받아 바늘귀만큼씩 벼루와 붓이 맑아진 것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후배는 하늘 아래 모든 선배에게 빚진 자들입니다.  

 

  한 :  앞의 질문에 이어지는 내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은 독서량이 대단한 시인인데요,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 그리고 지금, 책상 위에 있는 서적 중 한눈에 들어오는 책 세 권의 제목을 뽑아주신다면?

 

  정 :  알랭 바디우의 『들뢰즈-존재의 함성』(박정태 옮김. 이학사)-노트 못하고 있음. 자크 라캉의『세미나 11』(이수현 옮김. 새물결)-절반 이상 읽는 중. 스피노자의『에티카』(조현진 옮김. 책세상)-부록 검토할 차례. 예전엔 한 권 읽고 노트를 마쳐야 다음 책을 폈는데요. 요즘은 노트할 시간이 없을 뿐더러 한 권을 오롯이 독파하기도 힘들어요. 그래서 시간 장소 책의 무게 부피 등을 고려하며 이 책 저 책을 틈틈이 읽습니다. 산책할 때, 전철 탈 때, 잠들기 전과 깼을 때. 제가 망가지고 있는 중이죠. 푸후훗∼. 한가롭게 거닐던 시절이 오히려 시인다웠다고 회상합니다. 지금은 문인이라기보다 노동자 혹은 노예라는 생각이 들어요. 영광스러운.

 

 

    '문인은 영광스러운 노동자'

 

 

  한 : 잘 알려진 사실이 있지요. 많은 시인들이 선생님께 시집을 보내드리면 꼭 손 글씨로 편지지에 정갈한 글씨체로 답장을 써주시는 거요. 저도 받았었지만 그 정성과 성의 그리고 시인들을 존중하는 마음이 그 속에 다 들어있다고 생각했지요. 특히 선생님은 한글의 미학을 강조하면서 각의 중요함을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정 :  편지 쓰기는 한평생 생활수칙 제1번의 의무이자 즐거움이고요. 글씨체는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어요. 글씨는 그 나라의 건축과 복식을 닮는다고요. 찬찬히 분석해보니 한글은 우리나라 전통 가옥의 창살문과 풀 먹여 각을 세우는 모시나 삼베옷의 선을 닮았더군요. 자음의 이응 히읗을 빼면 모두가 똑바른 선과 각이 있어요. 그걸 휘어 쓰거나 내두르고 흘려 써버리면 고유의 격과 멋이 덜리고 맙니다. 여인의 한복 역시 최고의 아름다움은 치마 한 가닥을 에둘러 잡았을 때 층층이 꺾이며 흘러내리는 각과 선에 있다고 봅니다. 옛날의 풍속도나 미인도에 잘 나타나 있지요. 특히 글씨란 상대방이 잘 알아볼 수 있도록 쓰는 게 예의이자 겸손이고 소박함일 것입니다. 글은 곧 그 사람이라지만 글씨 또한 그 사람의 면모가 아닐까요?      

 

   한 :  “정성됨만이 인생을 영원으로 만든다.-괴테” 『바가바드 기타』를 읽으며 밑줄 친 대목이다.(『행복음자리표』 종려나무, 13페이지)

  위의 인용은 제2 산문집『행복음자리표』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선생님의 일상생활에서 길어 올리는 사유와 생활 철학 그리고 대인관계에서 발생하는 재미있는 일화들을 만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보호에 집중하시는 모습이 우리들을 부끄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특강도 많이 하신 것 같은데요 이 기회에 한 말씀 해주세요. (머리 염색을 하지 않는 강한 자긍심에 대해서도요)

 

  정 : 자연보호는 제 유년기의 만행에 대한 참회이기도 해요. 순자의 성악설에 동의합니다. 배추흰나비를 책갈피에 넣고 다듬잇돌로 눌렀던 적이 있습니다. 매우 좋아했던 발레리나-선배 언니의 편지에 넣어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풍뎅이과 곤충인 둥구를 잡아 목을 몇 바퀴 비틀고, 다리 관절들은 잘라버린 다음 땅바닥에 뒤집어놓고는 주변을 두드리면서 “둥구야, 둥구야 돌아라∼”를 외치며 놀기도 했었죠. 대문간에 장미꽃 봉오리가 벌어지자마자 잘라서 학교 교실에 꽂아놓고. 이런 소행들이 나이 들면서 반성되고 사물 하나하나의 존재에 눈뜨기 시작했습니다. 강물의 오염, 일회용 용기들, 버려지는 음식들, 멀쩡한 종이들. 저는 몇 년 전부터는 휴지도 헌 타월을 자잘하게 마르고 손질하여 개인전용 휴지로 사용합니다. 세탁해서 다시 쓰고요. 큰일을 볼 때만 두루마리 화장지를 쓰죠. 지구를 애인삼은 지 오래입니다. 애인의 마음으로 지구를 아끼죠. 나중엔 그리도 사랑한 연인의 품에 영원히 잠들겠지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에어컨 없이 여름나기를 한 결과 프레온가스를 줄였다는 점도 보람으로 남았습니다. 적응의 효과인지 가을 길에 발걸음이 한결 씩씩해졌어요.

  특강은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에요. 어쩌다 한 번씩 하는데 문단-내 강의 외에는 아예 뜻이 없습니다. 환경보호다 뭐다 팔리게 되면 고요한 생활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지요. 돈맛도 한번 들이면 빼기 어려울 테고, 저는 현재의 단조로운 분위기를 애호합니다. 책 읽고 회답하고, 걸으며 독서하고, 청탁받은 원고들 꼼꼼히 퇴고하며- 사는 날까지. 

 

 

    '시인에게 최종 병기는 시뿐' 

 

 

   한 :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하셨습니다. 30 년간의 문단 생활에서 느끼신 작가로서의 소회와 후배 시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문학정신’ 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세요.

 

   정 :  시인 중에는 시를 쓰는 사람과 시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각자에게 선택권이 있지요. 그 판단에 따라 다른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열흘쯤 전에 ‘2018 한중일 동아시아문학포럼’을 경청했는데요, 발제자였던 심보선 시인이 중국의 소설가이며 평론가 극작가인 쉬쿤 여사에게 “스타와 예술가의 차이”를 질문했습니다. “숭배감 없이 반짝이다가 사라지는 쪽이 스타이고, 독자가 있든 없든 시장에 관계없이 오로지 작품에 전념하는 쪽을 예술가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사회를 이끌지요.”라고 답했어요. 저는 비탈에서 겨우 버텨온 사람이지만 후배 시인에게 늘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시인에게 최종병기는 시뿐”이라고요. 시 말고는 여타의 행위도 진검이 되지 못하며 시간을 견딜 수 없다는 것, 30년 동안 겪으며 보아왔습니다. ‘문학정신’ 앞에 ‘문인정신’이 우선적으로 뿌리박혀야겠지요.  

  

  한 : 선생님 시를 관통하는 정서는 상처, 사랑, 죽음, 고독, 슬픔, 허무 등 철학적 명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어떤 명제는 난이도가 높게 작용하고 어떤 명제는 수학적이고 과학적이면서 시니컬하게 독자를 끌어당기고 때로는 놓아 버립니다. 지속적으로 실험하고 시도하고 리드해가는 시인의 모습이 항상 학생(*)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학생이라는 단어와 신분을 저는 매우 소중하게 지키고 싶습니다.

 

  정 :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일신일일신우일신日新日日新又日新 불철주야不撤晝夜 노소불문老少不問 채근함이 마땅하지요. 학생임을 자인/자임해야죠. 간서치가 될지라도. 책상물림이 될지라도.

 

   한 : 근간에 발표하시는 작품들 중에는 기표와 기의를 자유로운 상상 속에서 풀어나가시고(create), 언어를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선생님을 데리고 간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삶과 4」라는 시도 흥미 있게 읽었고요. 혹시 ‘이슬 프로젝트’ 이후로 연작시를 구상하고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정 :  네, ‘이슬 프로젝트’는 44번까지 나갔고 ‘협시脇詩’도 이미 8번까지 발표했어요. 옆구리 협자에 시시 자이므로 시 옆의 시가 되겠지요. ‘협시脇侍’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협시’ 연작은 상상력과 사유의 전제가 아니라 현실에 있었던 기억을 데려오는 것이에요. 현상적 배경과 현상학적 전환을 구슬려내는 방법입니다. 저도 육십 중반을 넘었으니 발자국을 돌아봄도 한 의미가 되겠다싶었고, 생의 마무리의 시작으로도 여기면서요.

 

    한 :  언젠가 문학 행사가 끝나고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선생님께서 쓸쓸하게 웃으며 저에게 말씀하신 기억이 납니다.

   “먼 훗날 내가 죽고 나면 머리 염색 안하고, 항상 식당에서 남은 음식을 담아가는 친환경적으로 살았던 시인으로 기억해주겠지요.”

   이날의 모습이 가끔 떠오릅니다. 선생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시인들은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정 : 아무리 옳은 일일지라도 남이 안하는 일을 처음 시도하려면 용기와 각오가 필요해요. 반복하다보면 자타가 함께 익숙해지지요. 게다가 바른 일에는 중력이 따릅니다. 저의 자식들은 진즉부터 그렇게 하고 있고요. 남편까지도 처음엔 저어하다가 몸소 챙겨들고 왔었지요. 군에서 퇴직 후 늦게나마 ‘배움터지킴이’ 재직 중 세상을 떠났는데, 유품 정리하러 갔더니 책상 위에 페트병을 잘라 만든 필기구 통이 있더라고요. 머리 염색 안하기, 남은 음식 안 버리기, 종이 한 장 아끼기 등등 언젠가 누군가도 그리한다면 지구가 좀 건강해지지 않을까요? 

 

   한 :  또 가끔 선생님께서는 이 사회의 부조리와 비합리성에 대해서 격분하실 때도 있습니다. 현실의 당면문제는 무엇이고 시인들은 이러한 지난한 시대를 어떻게 짚고 가야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정 : 요즘은 산과 들의 생태계뿐 아니라 사람끼리의 세상도 폐허가 되어가는 느낌이에요. TV뉴스를 봐도 훈훈하지 않고, 드라마도 그렇고, 시를 읽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의란 어려운 것도 아니고 모르는 바도 아닐 텐데, 단순히 옳음에 따라 실천하면 될 텐데 부정적 감정이 끼어드는 게 문제죠. 욕심, 시기심, 경쟁심의 작용이 그 주범이라고 봅니다. 저는 착함보다 바름을 선호하는데요. 착함은 감성이라 변할 수 있으나 바름은 이성이므로 견고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성리학의 이기론에서도 기보다는 이를 우위에 두지요. ‘외로움이 두려우면 정의로울 수 없다’는 산문을 얼마 전 잡지에 발표했는데, 그것이 저의 소신이기도 합니다. 외로움-어디서 올까요? 사회로부터 이웃으로부터 형제자매로부터 옵니다. 어떤 형태의 외로움도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자기 충만이 있어야 해요. 그것은 스스로 키워 가져야 되는 것이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개개인의 자긍심과 자존감이 꿋꿋하고 유연하며 넉넉하다면 이 시대는 저절로 밝고 바르게 될 것입니다만, 그 바람이야말로 환상일지 모르죠.

 

   한 : 선생님께서는 신조어도 여럿 만드신 걸로 압니다. 소개해 주실 수 있는지요?

 

    정 : 문인은 국어를 다듬고 빛낼 뿐 아니라 보충하는 데에도 일조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많은 언어가 우리를 돕고 있지만 간혹 부족을 느낄 때가 있어요. 그러면 저는 고심 끝에 만들어 쓰곤 합니다. 물별. 을래. 빗발꽃. 과잉곡선. 공검이 그것입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설명이 길기 때문에 해당 단어만을 제시했어요. ‘공검’이 가장 최근에 발표한 시의 제목인데 ‘허를 찌르는 칼’을 압축한 용어입니다. 즉 촌철살인적인 표현의 담당자이며 수행자인 ‘시인’의 유의어/동의어/대치어로 쓸 수 있지요. 꼭 시인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재기발랄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다. 

 

   한 :  많은 질문에 진심과 정성으로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 : 불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한마디나마 건질 게 있을지 걱정됩니다. 부디 저의 용렬함은 채워주시고 넘침은 잘라내며 혜량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미래시학 편집부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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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시학』 2018-겨울호 <특집|중견시인과의 산책>에서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뿌리 깊은 달』외,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 질마재문학상 · 들소리문학상 수상

 * 한정원/ 1998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그의 눈빛이 궁금하다』『낮잠 속의 롤러코스터』『마마 아프리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