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_ 가상 인터뷰>
박경리 : 송희복
송희복: 선생님 살아생전에도 뵌 적이 있었습니다마는 수인사나 대화는 전혀 없었습니다. 물론 따님 부부와는 개별적으로 수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 가족들과 떨어져 살고 계신 하늘나라로부터 선생님을 초대하여 저와 가상대화를 나누게 된 것을 무척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박경리: 네, 저도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서 『월간문학』독자들과 자리를 함께하는 것을 무척 바람직스럽게 생각합니다.
송희복: 선생님 하면 독자들은 불멸의 명작인 대하소설 「토지」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대하소설 「토지」이전에 나온 선생님의 중요한 작품인 「김약국의 딸들」도 저주의 운명을 받은 가문의 이야기인데, 주박(呪縛)의 세계관을 벗어난 자리에 저 '토지'의 근대적인 세계가 시작되고 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경리: 네, 그렇습니다. 근원적으로 토지를 소유하고 사유한다는 관념은 근대적인 토지 소유의 개념에 대한 의의를 머금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생명력의 자연적 토대로서의 토지에 대한 생각을 상실하면서 역사는 지배와 종속의 관계가 성립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송희복: 토지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존재의 터전이었습니다. 이즈음 사람들의 땅에 대한 개념은 택지(宅地)로 한정되어가는 감이 있었는데, 존재를 가능하게 하며, 태어나서 목숨을 거두고, 세대를 이어가는 터전으로서의 땅은 아무래도 전답(田畓)이 아니었나 생각이 됩니다.
박경리: 땅을 전답의 소유 개념으로 가치를 둔 시점이 비로소 근대라고 한다면, 땅을 택지의 사유 개념으로 최대치로 값을 매기는 것은 탈(脫)근대적인 욕망의 반증이라고 하겠지요. 나는 근대의 관점에서 대하소설 「토지」를 4반세기에 걸쳐 집필해 왔고, 또 어렵사리 완결했습니다만, 지금의 독자들은 포스트모던한 시대의 토지관을 가진 사람들이 내 소설을 읽고 있는 셈이 됩니다.
송희복: 여기에 무슨 상위점이 생기지 않을까요?
박경리: 저는 딱히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토지관이 다른 시대에도 시대의 다름을 넘어서 삶의 보편성, 가치의 보편성이란 게 있다고 봅니다.
송희복: 저는 개인적으로 「토지」에서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에 비평적으로 주목하고 싶습니다. 윤씨부인과 김개주, 별당아씨와 김환, 서희와 길상, 이상현과 기화, 공월선과 이용, 귀녀와 강포수 등등의 커플이 등장합니다. 모두 서로 다른 빛깔의 사랑을 다양하게 수(繡)를 놓고 있지요.
박경리: 동서고금의 고전적인 명작소설에는 인간의 연애감정이 들어앉아 있지요. 남녀 간의 사랑은 늙지도, 낡지도 않습니다. 언제나 새로 숨쉬고, 늘 생명을 솟구치게 합니다.
송희복: 선생님의 「토지」에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모성적인 수용성이 최대의 미덕으로 자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기면서 무한 생명이 고양하는 웅숭깊은 문학사상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박경리: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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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1926~2008, 81세)
-1926년 10월 28일 (음력) 경남 통영 출생
-1945년 진주여자고등학교 졸업
-1950년 황해도 연안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
-1955년 김동리 추천으로 단편 「계산(計算)」과 1956년 단편「흑흑백백(黑黑白白)」을 『현대문학』에 발표함으로써 문단활동 시작
- 장편 『표류도』『김약국의 딸들』『가을의 여인』『노을진 들녘』『시장과 전장』『은하』『푸른 운하』『파시(波市)』『토지(전21권)』등
- 단편집 『불신시대(不信時代)』『박경리 단편선』『영원한 반려』등
- 시집『못 떠나는 배』『도시의 고양이들』『우리들의 시간』
- 유고시집『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수필집『가설을 위한 망상』『기다리는 불안』『거리의 악사』『만리장성의 나라』『생명의 아픔』『원주 통신』『Q씨에게』등
- 현대문학 신인문학상, 내성문학상, 월탄문학상, 호암예술상,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기념메달 등 수상
- 2008년 5월 5일 별세
***사후, 2008년 금관문화훈장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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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문학 』2016-9월호 <권두_ 가상 인터뷰> 전문
* 송희복/ 문학평론가, 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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