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수상소감_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한 고백과 다짐/ 이지엽

검지 정숙자 2016. 8. 23. 15:48

 

 

    제16회 고산문학대상 수상작 특집|시조부문_이지엽|수상소감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한 고백과 다짐

 

     이지엽

 

 

  제 문학의 원천은 해남입니다.

  생각해보면 참 어려운 시절이었지요. 은적사 있는 마산면 은적골에서 해남 읍내로 나와 살 적에도 남의 집에 세 들어 살았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이었는데 어머니는 그릇 장사를 하러 갔고, 혼자 남은 나는 무섭기도 하고 외롭기도 했지요. 문학의 감성은 대부분 이때 형성이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어머니가 해놓고 간 밥은 닷새가 되면 떨어졌어요. 그래서 이후는 제가 밥을 해야 했지요. 순 꽁보리밥이었는데 어머니가 한 밥과 달리 내가 한 밥은 왜 그리 부슬거리며 윤기가 없었는지, 그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지요. 그러고 나서 오십 년이 지나 고향에서 상을 이리 받습니다.

  가슴으로, 온몸으로 받습니다.

 

  십여 년 전부터 이맘때가 되면 늘 대형 차량 두 대로 해남을 다녀가곤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상을 받을 때도 저는 즐겁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받을 생각도 않은 내가 상을 받게 되니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하기 그지없습니다. 고향이 내게 무한한 문학의 자양을 주었으니 저는 평생을 고향을 위해 일을 해도 부족하지요. 하면서도 늘 부족함을 많이 느끼는데 상이라니 황감할 뿐입니다.

 

  해남의 서림과 학동과 아침재로 넘어가는 길이 늘 내 가슴속에 살아 있습니다. 서림 뒤의 솔바람소리, 해남 들판의 보리 향내와 황톳길의 정겨움, 그리고 가슴을 훑고 올라오는 구성진 남도창 소리가 도시의 마른 골목길을 걸으면서 늘 살아 있습니다. 뒷골목에서도 생생히 살아 나를 지탱합니다. 이것들 위에 생은 늘 힘들지만 아름답게 존재하는 것이어서 그 힘으로 여기까지 이렇게 왔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열심히 번 돈으로 잡지를 하고 계간 『열린시학』과 『시조시학』을 하고 그렇게 20년을 버텨왔습니다. 계간으로  잡지가 나올 때면 늘 잔고가 부족했고, 그때마다 주머니를 털었으니 어지간히 못난 짓을 해온 셈입니다. 잡지를 하면서 저는 낮아지고자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문인들의 마당 같은 곳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권력이 되면 안 되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늘 엄밀해지려고 했습니다. 남들을 특집의 자리에 앉혔어도 나를 위해서는 특집 하나 하지 않았습니다. 20년 지나 어쩔 수 없이 이 상을 받은 것으로 이렇게 특집을 하게 되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믿음을 가진 이후로 이것들 위에 있는 더 높고 큰 세계가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문심조룡에 나오는 도끼날과 논(論)의 비유를 늘 생각합니다. 결코 자만하거나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겠습니다. 자연이든 우주든 어떤 것에 목적을 두더라도 중요한 것은 사랑이고 사람입니다. 우리가 항용 애용하는 양파, 마늘, 생강의 식재료나 열무 김치나 목련 등의 음식과 꽃과 자연이 <내가 사랑하는 여자>이듯이. 작년에는 홍매실과 열무김치로 행복했고 올 여름에는 오이 부추 김치의 시원함으로 더위를 잘 넘어가고 있습니다.

  늘 시의 본질을 생각하고 더 찰지고 아프게 생을 살아가겠습니다. 제게 상을 주는 것은 그렇게 하라는 채찍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민낯으로 작품에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재된 희망과 사랑을 은은하게 전해주는 전도사가 되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선고해주신 정용국, 박명숙 시인과 본심을 맡아서 수고해주신 김제현 선생님과 박시교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고산문학상을 제정하여 애써주시는 해남군 관계자 모든 분들과 해남군민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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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시학』2016-가을호 <제16회 고산문학상 수상자 특집/ 시조부문_이지엽/ 수상소감> 전문

 * 이지엽/ 1958년 전남 해남 출생, 1984년《경향신문》신춘문예에 시조 당선, 시집『다섯 계단의 어둠』, 시조집『떠도는 삼각형』, 논문집 『한국 현대시조 작가론1』『21세기 한국의 시학』외 다수. 성균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외에도 많은 상을 수상.『한국동시조』발행인, 『열린시학』『시조시학』편집주간, 2007년에 이어 2016년 『시여, 다시 희망을 노래하라!』총괄 기획_출간(수원미술전시관 8.16~8.28. 화가의 그림과 시인의 자필시 앙상블_총 900인 참여, 기간 중 매일 인문학 콘서트 병행), 현재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