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별에 대한 주석
정숙자
물결이 햇빛을 반사할 때 생기는 반짝거림을 한 마디로
표현할 낱말이 없었습니다. 그것을 설명하다보면 문장의
리듬이 풀어져 버리고 말지요. 조어가 절실했습니다. 가령
"오늘 오후, 버스 타고 한강을 지나는데 물별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라고 하면 금방 통할 수 있는 이야기를 물별이
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면, 몇 마디 말과 시간을 더 소비해
야만 전달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물별이라는 명사를
모든 사람이 알게 된다면 몇 음보의 해설 없이도 눈부신 수
면을 즉시 연상할 수 있겠지요. "오늘은 물별이 서너 개밖
에 없더라"라고만 하여도 물빛의 정도를 금세 떠올릴 수 있
겠지요. 국어사전에 물별이라는 식물이 나와 있지만, 또 하
나의 물별이 생긴다고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별
이라는 이름씨가 '단추'라는 말 버금으로 자연스럽게 쓰이
기를 바랍니다. 물별은 분명 창공의 별을 닮았고 물 위에 뜨
는 빛이니 적합하리라고 여겨집니다. 물별은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 곁에 있기 때문에, ―창공의 별보다 덧없고
영원하며 슬프고 또 아름다운 진짜 별일지도 모릅니다.
-『현대시』2004.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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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에서/ 2006.9.25.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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