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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자
먹다. 먹히다먹힌다먹혔다. 사라짐이 보이는 흐름이다.
먹는다먹었다,가 아니다. 먹히는 쪽은 늘상 눈을 뜨고도 먹
는 쪽을 먹지 못한다. 시냇물 대 바다의 관계를 신은 왜 풍
경으로 설정하였나. 그 단순한 그래프 아래 소용돌이치고
술렁이고 쓰러지는 줄기들. 밤낮으로 이랑진 이곳은 조물
주의 남새밭일는지 모른다. 우리의 고뇌가 섬유질 채소일
지도 모른다. 벌레가 우글대는 광장을 보면 유기농이 애매
하다. 신도 건강을 염려해야 하나? 종자도 다양도 하지. 뿌
려 두기만 하면 저절로 자라는 희로애락, 그것이 향료인지
도 모른다. 틀렸거나 덜 된 생명이 아니다. 어엿한 목숨이
건만 당일에 안 팔렸대서 절반값이 붙었다. <정가>라고 붙
었다. 먹힘에도 때가 있다. 뽑혔다는 게 무슨 뜻인가. 하루
사이 쓰레기 처리되는 잎새들, 열매들, 뿌리들. 슈퍼마켓
카트를 밀며 낯익은 신을 만난다.
-『문학과창작』2000.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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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에서/ 2006.9.25.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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