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시집 · 열매보다 강한 잎

내 오십의 부록/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0. 9. 19. 00:53

 

 

      내 오십의 부록

 

      정숙자



   편지는 내 징검다리 첫 돌이었다

   어릴 적엔 동네 할머니들 대필로 편지를 썼고

   고향 떠난 뒤로는 아버님께 가용돈 부쳐드리며 “제 걱정은

마세요” 편지를 썼다

   매일 밤 내 동생 인자에게 편지를 썼고

   두례에게도 편지를 썼다

   시인이 되고부터는 책 보내온 문인들에게 편지를 썼고

   마음 한구석 다쳤을 때는 구름에게 바람에게 편지를 썼다

   돌아가신 어머니 그리울 때는 저승으로 편지를 썼고

   조용한 산책로에선 풀잎에게 벌레에게 공기에게도 편지

를 썼다

   셀 수 없이 많은 편지를 쓰며 나는 오늘까지 건너왔노라

   희망이 꺾일 때마다 하느님께 편지를 썼고

   춥고 외로울 때는 언젠가 묻어준 고양이 무덤 앞에서 우

울을 누르며 편지를 썼다

   어찌어찌 발표된 몇 줄 시조차도 한 눈금만 들여다보면

모습을 바꾼 편지에 다름아니다

   편지는 내 초라한 삶을 세상으로 이어준 외나무다리, 혹

   맑고 따뜻한 돌다리였다

   편지가 있어 내 하루하루는 식지 않았다

   한 가닥 화려함 잃지 않았다

   편지봉투 만들고, 편지지 접고, 우표를 붙일 때마다

   시간과 나는 서로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또 믿었다

   그리고 그 조그만 빛이 다음 번 징검돌이 되고는 했다 
     -문학마당2004. 겨울호 

     *  원제 :우표를 붙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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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에서/ 2006.9.25.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