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한 날의 몽상
-無爲集 2
정숙자
막대기가 셋이면 <시>자字를 쓴다
내 뼈마디 모두 추리면 몇 개의 <시>자字 쓸 수 있을까
땀과 살 흙으로 돌아간 다음 물굽이로 햇빛으로 돌아간
다음 남은 뼈 오롯이 추려
시 시 시 시 시 시 ''
이렇게 놓아다오
동그란 해골 하나는 맨 끝에 마침표 놓고 다시 흙으로 덮
어다오
봉분封墳일랑 돋우지 말고 평평하게 밟아다오
내 피를 먹은 풀뿌리들이 짙푸른 빛으로 일어서도록 벌
레들 날개가 실해지도록…
가지런히 썩은 <시>자字를 이슬이 먹고 새들이 먹고 구름
이 먹고 바람이 먹고…
자꾸자꾸 먹고 먹어서 천지에 노래가 가득하도록…
독을 숨기고 웃었던 시는 내 삶을 송두리째 삼키었지만
나는 막대기 둘만 있으면 한 개 부러뜨려 <시>자字를 쓴다
젓가락 둘 숟가락 하나 밥상머리에서도 <시>자字를 쓴다
못 찾은 한 구절 하늘에 있어 오늘도 쪽달 허공을 돈다
-『시와사람』2003.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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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에서/ 2006.9.25.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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