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집 속의 시

『불확정성의 시학』김윤정/ 발췌

검지 정숙자 2014. 10. 13. 21:12

 

 

  『불확정성의 시학』김윤정/ 발췌

 

    

*  나에게 시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의미도 논리도 아니고 그것이 발휘하는 에너지의 질과 양이다. 그것이 나에게 말을 거는 순간의, 상황의, 사태의 성질이 시에 관한 호불호를 가름한다. ('머리말' 부분- P. 6)

 

*  우리에게 현대철학은 흔히 포스트구조주의로 알려져 있는 철학 경향을 가리킨다. 푸코, 라캉, 들뢰즈, 데리다 등의 철학이 그것이다. 포스트구조주의는 구조주의에 기반하되 구조주의의 정태성을 극복하며 등장한다. 세계가 내재적 요소들의 관계에 의한 안정되고 잘 짜여진 체계에 해당한다는 구조주의적 관점에 대해 포스트구조주의는 구조 밖의 외적 요소, 예컨대 욕망과 카오스, 엔트로피와 같은 무한 지대를 상정함으로써 구조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말한다. 포스트구조주의가 기성의 체제를 균열시키는 혁명의 철학이기도 한 것도 이와 관련된다. 즉 포스트구조주의는 기존의 완결된 담론의 권위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담론을 탄생시키는 배경이 된다. 이러한 포스트구조주의의 영향으로 우리 시단에 새로운 언어에 의한 담론의 혁명을 도모하는 경향이 확산되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흔히 해체주의로 알려진 시단의 새로운 경향은 이러한 현대 철학이 낳은 시의 뚜렷한 흐름이다.

  현대 철학은 그러나 파괴적 시학만을 야기시킨 것은 아니다.현대 철학이 미친 것은 시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시의 경계를 떠나 우리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것은 이성이나 실체 등 동일하고 불변하는 것을 부정하는 문화 전반의 것과 관련된다. 가령 이성보다는 감성을 중시하는 것이나 현실보다는 환각이나 환상을 추구하는 문화적 경향들이야말로 해체시보다 더욱 중요한 현대 철학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가까운 예로 한류 열풍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한국 드라마로 촉발된 한류에 대한 관심은 곧 감성적 문화에의 경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판타지가 지배적 장르가 된 것 역시 확고불변의 실체가 아닌 변화와 '사건'이 시대적 인자가 된 점에서 비롯한다. 판타지는 곧 일시적이고 덧없는 것을 중시하는 사전 중심 시대의 대표적인 장르인 셈이다. (p.14-15) 

 

*  소위 해체주의라 하는 21세기 시에 등장한 새로운 스타일은 단순히 한 시절 유행하는 기법이나 사조가 아니라 시대의 문법이자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새로운 세기의 인식의 틀, 곧 21세기의 에피스테메(episteme)다. 때문에 그것은 비단 전위적 스타일의 시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모든 문화 속에 인식의 소(素)로서 내장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해체주의는 시의 문법을 전폭적으로 변화시켰지만 그것은 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동시대인의 인식의 체계를 변환시킨 것이다. 즉 해체주의는 시대를 관통하는 새롭고도 보편적인 인식체계다. 초월적 기의나 기원에 관한 회의, 경계의 무화와 위반의 범례들은 21세기라는 새로운 시대의 전문화적(全文化的) 지향이자 근거였다. 21세기 문화의 저변에는 그러한 인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동력처럼 작용하는 것이리라. (p. 25)

 

*  어떤 인간도 타자가 빨아들이는 중력의 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p. 28)

 

*  위상학적 공간이란 사물과 언표 사이의 상관성 및 이질성을 담보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세계와 관계하에 놓이되 그와 구별되어 새로이 구축되는 독자적인 공간을 가리킨다. 위상학적 공간은 보편적인 구조에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개체가 이루는 고유한 텍스추어를 지니게 되는바, 따라서 이때의 언표는 사물을 재현하는 것도 또한 분리되는 것도 아닌 재구성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p. 53)

 

*  이렇게 하여 탄생한 시란 곧 세계와의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위상학적 공간이 된다.  (p. 55)

 

*  작품의 가치는 더 이상 현실을 얼마나 잘 재현하였고 현실에 얼마나 개입하였는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어떤 공간을 구축하였는가와 어떤 의미적 효과를 나타내는가에 의한다.  (p. 56)

 

*  현대시가 어렵고 이해불능이 되는 것은 그것이 논리적 코드를 사용하지 않기 떄문이다. 현대시에서 이성은 더 이상 중요한 코드가 아니다. 언표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논리성 없이 이어지고 분리되는 등 무질서한 계열들을 이룬다.  (p. 61)

 

*  체내화된 스타일에 길들여졌을 때 시는 더 이상 발화주체의 생생한 육성을 담아내지 못한다. 세련되고 화려하게 보이는 권력화된 시적 스타일에 자신의 문체를 맞추려고 할 경우 언어는 체제의 외피를 입을지언정 자신의 도전적인 사유와 깊은 내면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다. 편가르기를 하기 전에 이러한 세태는 우리가 공동으로 철저히 경계해야 되는 양상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새로운 사유와 문화를 창출해야 하는 임무를 띠는 문단은 불신과 낙후의 저생산의 골짜기로 빠져들 것이기 때문이다. 부정에 부정을 거듭하는 정신, 사유의 진보에 진보를 이어가는 준열한 시의 정신이 난삽한 문화로부터 시를 지켜내고 시의 수준을 업그레이드시키는 동력이 될 것이다.  (p. 65)

 

*  언어가 실질이 아니라는 관점은 언어가 본질을 담아내야 한다는 부담으로부터 언어를 자유롭게 한다. 그것은 언어로 하여금 더 이상 현실의 무게로 짓눌리지 않도록 허용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언어가 가중된 무거움을 털어내야 한다는 당위에도 불구하고 말의 유희는 언어의 시적 성질을 훼손시킨다. 언어의 가벼움은 사물과의 분리이자 본질과의 이반이고 그것은 세계와 무관한 언어의 고립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언어는 보기엔 매혹적일지라도 세계의 내면을 소거한 비어 있는 언어이다. 또한 그것은 세계 내에서 깃털처럼 떠돌되 세계를 바꿀 수 있는 아무런 힘도 소유하지 못하는 공허한 언어라 할 수 있다.  (p. 77)

 

*  사물의 울림을 지각하는 시인의 감수성은 어쩌면 저주받은 것이다.  (……)  일상에서 평균적으로 소통되는 일정 범위 내의 지각력을 벗어날 경우 그 주체는 이방인이 된다. 이방인이 된다는 것은 평생을 모든 장소에서 고독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신의 저주가 아닐 수 없다.  (p. 94)

 

*  생과 사의 뒤틀린 공간 속에 놓여 있는 인간에게 명확한 것은 아무것도, 어디에도 있지 않다. 인간이 놓여 있는 시공은 언제나 인간의 삶을 불확정적이게 한다. 인간은 항상적으로 불안하고 공허하다. 이를 넘어설 수 있는 자 누구인가?  (p. 109)

 

*  곧 세계의 불확정성은 인간을 한없는 불안과 허무로 몰아간다.  (p. 112)

 

*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 지도 벌써 1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아방가르드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였던 이들 시에 대해 이제 우리는 보다 성찰적인 태도를 보여야 할 듯하다. 몇몇 개성 강한 시인들에 의해 시작된 이들 시의 경향이 이미 하나의 문법으로 자리잡고 많은 아류들을 낳았으며 새로운 시적 스타일을 계발함에 있어 그 진보의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이때에 시대를 대표하였던 작품들의 경향에 대해 반성적으로 접근하는 작업은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p. 133)

 

*  아방가르드가 더 이상 전위가 될 수 없는 시점이라면 우리는 또 다른 측면에서의 진보를 모색해야 할 터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지금 처해 있는 질곡에 천착할 때 비로소 주어질 것이다.   (……)  해체시는 처음 출현 당시 기존 언어에의 변혁이라는 혁명성을 지니고 우리의 의식에 충격을 가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충격의 에너지가 미약해지면서부터는 물론 다른 형태이지만 다시 언어의 체제 안으로 흡수되어가는 형국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우리에게 생생한 감각, 살아 있는 육체성, 언어의 물질성이 요구되는 것도 이 지점이다. (p. 135 -136) 

 

*  삶과의 변증법에 의해 탄생하는 시가 언어적 밀도를 채우고 있는 시라면 삶에 뿌리내리지 않은 채 상처투성이에 길들여진 시들은 언어의 밀도가 낮은 것들이 된다./  밀도가 높은 언어는 그 안에 녹아있는 고군분투의 함량을 말해준다. 반면 밀도가 낮은 언어는 고투의 흔적이 약한 것으로서, 이것은 투여된 에너지 양이 부족하여 독자를 자극하거나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정도가 약해진다. 즉 이러한 시들은 매개력이 부족한 것들로서, 관념적이고 헛도는 언어라 할 수 있다. (p. 146)

 

*  …시간으로부터의 탈출…  (p. 236)

 

*  실상 서정성과 정치성은 모두 인간이 겪은 절망에 대한 응답들에 해당한다. 이것들은 이성이 붕괴되고 언술이 소통되지 못할 때 제시되는 인간들의 특정 행동유형들이다. 즉 인간들 사이의 화해롭지 못한 국면에서 시의 서정성과 시의 정치성이 발현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와의 불협화음 속에서 인간은 내면적 서정성을 구하거나 세계와의 외적 투쟁에 돌입하는 것이 이와 관련된다. 말하자면 시의 서정성과 정치성은 세계와의 긴장과 갈등 속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치열한 응전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서정성과 정치성은 그 전제와 뿌리가 같다.  (p. 240)

 

*  판에 박힌 일상과 팽팽한 이해관계가 가져오는 억압적 생의 한가운데에 시가 있다는 것은 커다란 위안이다.  (……)  시는 세상의 견고한 인식 및 사유의 벽에 피를 흘리며 부딪히는 무위의 행동이라 할 수 있다.   (p.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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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사상 평론선 18『불확정성의 시학』/ 2014.5.15  <푸른사상> 발행

  * 김윤정/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문학평론가로 활동 중이며 현제 강릉원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김기림과 그의 세계』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지형도』

                      『언어의 진화를 향한 꿈』

                      『한국 현대시와 구원의 담론』

                      『문학비평과 시대정신』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