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블랙맘바/ 황정산

검지 정숙자 2024. 10. 31. 01:21

 

    블랙맘바

 

     황정산

 

 

  돈다발 사이에서 너를 만났다

  악당 빌을 죽이는 영화에서였다

  뱀을 좋아하던 시절이었다

  권법보다 칼보다 더 민첩하고 예리하게

  눈먼 것들을 죽이고 있었다

 

  주)

  블랙맘바는 아프리카에 사는 독사이다

  맹독을 가진 이 뱀은 아주 빠르기도 해서

  치타를 뒤쫓아가 물어 죽인다고 한다

  아프리카 사지의 개체수가 줄어든 것도 이 뱀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학계에 보고된 사실은 아직 없다

 

  코끼리를 물어 죽이고 먹지 않는

  정의를 위해서 눈을 어둡게 칠한

  검은 입속에 희생자의 공포를 감춘

  우리는 모두

  잽싸거나 치명적이거나

     -전문-

 

  해설> 한 문장: "블랙맘바"는 알다시피 맹독을 지닌 눈과 입만 검은색을 띤 코브라과 뱀으로 잽싸고 사납기로 유명하다. 영화 『킬빌』에서 여주인공 베아트리스 키도의 코드 네임이기도 한 "블랙맘바"는 대상을 가리지 않고 끝까지 쫓아가 죽이는 등, 살상본능이 그 자체로 DNA에 기입된 난폭한 동물이다. 알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눈에 보이는 모든 상대를 물어뜯는 공격성 자체가 디폴트로 장착된 뱀이라고 한다. "블랙맘바"의 이러한 속성은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대상을 물어뜯고 독에 감염시켜 무기력하게 만들거나 죽음에 이르게 한다. 위의 텍스트에서 "블랙맘바"는 다수성의 세계가 은밀하게 살포한 독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내면에 숨기고  있는 이기적인 성향이나 탐욕, 파괴 본능을 의미하기도 한다. 동사로서의 언어를 마비시키거나 경화시켜 부사나 명사로 고착화하고 관습화하는 모든 제도화된 언어, 다수자의 언어, 규율화된 언어, 상업주의에 물든 언어도 시인에 의하면 결국에는 "블랙맘바"의 그것으로 분류될 수 있다. '블래'이란 결국 '블랙'의 장막에 균열을 내는 모든 빛, 파열들을 삼켜버리고 일자적인 것으로 봉합해버리는 최면이면서 술수이고 음모라고 할 수 있다. (p. 시 19/ 론 119-120) <김효은/ 시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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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시집 『거푸집의 국적』에서/ 2024. 10. 15. <상상인> 펴냄

 * 황정산/ 1958년 목포 출생, 1993년『창작과비평』으로 평론 활동 시작, 2002년『정신과표현』에 시 발표, 저서『주변에서 글쓰기』『쉽게 쓴 문학의 이해』『소수자의 시 읽기』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