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모르는 당신/ 이화영

검지 정숙자 2024. 10. 26. 00:57

 

    모르는 당신

 

     이화영

 

 

  나는

  당신의 이름을 알지만

  당신은 모릅니다

 

  당신을 만나서 기쁘지만 언제 당신을 잊을지 모릅니다

 

  당신의 얼굴은

  내가 아는 그녀와 많이 닮아서 자꾸 웃게 합니다

 

  왜 이렇게 늦게 만났느냐고

  어디 사냐고

  묻지만

  그 순간에도 난 당신을 잊어 갑니다

 

  어느 날은 전혀 모르는

  당신이 따뜻했습니다

  당신은 내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우리는 어디서든 잊고 잊습니다

  잊는 일은 우리를 만나고 웃게 합니다

 

  사람들은 나에게 친절합니다

  나는 꽃잔디 같은 미소를 짓고

  당신은 자꾸 내 손을 만지작거립니다

 

  당신이 떠날 때

  당신 얼굴과 이름이 떠올랐지만

  나는 문턱을 넘지 못하고 배웅합니다

 

  모르게 잊고 살다

  어느 하루는

  당신이 생각나 가만 잠이 듭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이 간곡한 사랑의 시편은 '모르는 당신'이라는 신비로운 2인칭을 향해 건네는 간절한 마음의 화폭으로 다가온다. '나'는 '당신'의 이름은 알지만 정작 '당신'을 알지는 못한다. 만나면 기쁘지만 언젠가 잊을지도 모르는 순간순간에 '나'는 그 '모르는 당신'이 더욱 따뜻함을 느낀다. '당신'은 언제나 떠나고 '우리'는 그때마다 서로 잊어버린다. 하지만 그렇게 잊어버리는 일은 '나'와 '당신'을 다시 만나게끔 해 주는 사랑의 역설을 허락한다. '나'는 '모르는 당신'을 잊고 살다가 문득 '당신' 생각에 잠이 들기도 한다. 표면적 논리로 보면 '당신'은 이별과 망각을 불러오는 미지의 대상이지만, 이면적 흐름으로 보면 그 미지의 상태는 오히려 항구적 만남을 가능케 해 주는 역리逆理를 품는 것이다. (······)  '모르는 당신'은 그러한 역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선명하고 아득한 2인칭인 셈이다. (p. 시 14-15/  121-122) <유성호/ 문학평론가 ·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

 * 시집 『하루 종일 밥을 지었다』에서/ 2024. 10. 4. <시작> 펴냄

 * 이화영/ 1965년 전북 군산 출생,  2009년 『정신과표현』으로 등단, 시집『침향』『아무도 연주할 수 없는 악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