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혼자 돌아와야 하는 밤처럼 외 1편/ 김병호

검지 정숙자 2024. 10. 25. 01:17

 

    혼자 돌아와야 하는 밤처럼 외 1편

 

     김병호

 

 

  아이가

  울음을 참고 있다

 

  이를 앙다물고

  주먹을 불끈 쥐고

 

  서둘러 참는 법을 배웠는지

  발목이 가늘다

 

  숨을 데가 없는 자정

  어디서 멈춰야 할지를 모른 채

 

  나를 업고 가는 아이는

  얼굴이 없다

 

  함부로 길들여진 저를

  까맣게 잊는 일처럼

 

  아이가

  늙는다

 

  아직 더 가난해질 게 남은 듯

  깊이 구부린 아이가

 

  나는 

  오래오래 무섭다

    -전문(p. 1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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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 아니면 여수쯤

 

 

  기슭도 없는 너울은

  어디쯤에서 몸을 벗을까

 

  잘못 왔구나

  지구에 태어나는 게 아니었는데

 

  잃어버린 게 뭔지 몰라 막막해하는

  오늘은, 신을 한번 바꿔도 좋겠다

 

  아무도 모르는 일은

  아무 일도 아닌 일

 

  너를 아는 게 가난해서

  내가 이 별에 온 이유가 있겠지

 

  오늘은 스물한 살

  어제는 마흔아홉

 

  막연하고도 우아한 잠깐에

  일백 번쯤 환생하지 않았을까

 

  자꾸만 태어나지는 벌

 

  어떻게 하면 이제 집으로 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내가 이긴 것 같을까

 

  너울은 끝이 없어 아름답고

  너는 누구여도 이유가 없겠다

     -전문(p. 6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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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슈게이징』에서/ 2024. 10. 25. <시인의일요일> 펴냄

 * 김병호/ 200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달 안을 걷다』『밤새 이상을 읽다』『백핸드 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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