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돌아와야 하는 밤처럼 외 1편
김병호
아이가
울음을 참고 있다
이를 앙다물고
주먹을 불끈 쥐고
서둘러 참는 법을 배웠는지
발목이 가늘다
숨을 데가 없는 자정
어디서 멈춰야 할지를 모른 채
나를 업고 가는 아이는
얼굴이 없다
함부로 길들여진 저를
까맣게 잊는 일처럼
아이가
늙는다
아직 더 가난해질 게 남은 듯
깊이 구부린 아이가
나는
오래오래 무섭다
-전문(p. 1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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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아니면 여수쯤
기슭도 없는 너울은
어디쯤에서 몸을 벗을까
잘못 왔구나
지구에 태어나는 게 아니었는데
잃어버린 게 뭔지 몰라 막막해하는
오늘은, 신神을 한번 바꿔도 좋겠다
아무도 모르는 일은
아무 일도 아닌 일
너를 아는 게 가난해서
내가 이 별에 온 이유가 있겠지
오늘은 스물한 살
어제는 마흔아홉
막연하고도 우아한 잠깐에
일백 번쯤 환생하지 않았을까
자꾸만 태어나지는 벌
어떻게 하면 이제 집으로 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내가 이긴 것 같을까
너울은 끝이 없어 아름답고
너는 누구여도 이유가 없겠다
-전문(p. 6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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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슈게이징』에서/ 2024. 10. 25. <시인의일요일> 펴냄
* 김병호/ 200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달 안을 걷다』『밤새 이상을 읽다』『백핸드 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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