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슬픔
윤성관
슬픔 하나가
풀벌레 울음소리에 실려와
명치끝을 누르고 코끝을 찌르다가
심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묵은 슬픔에 기댄다
오래된 슬픔은 철조망 너머
팬티차림으로 구타당해 늘어진 한국군 곁에 있었고
짙게 화장하고 미군의 목덜미를 기다리는
젊은 여인들과 골목을 서성거렸다
삐라를 뿌리고 구호를 외친 뒤
불을 안고 옥상에서 뛰어내린 젊은이에 대해
슬픔은 더 이상의 증언을 거부했다
살아남은 자는 늘 비겁했다 손바닥 뒤집듯 표정을 바꾸고
거짓과 위선으로 썩은 내를 숨긴 채
앞만 보고 종종걸음치는 그들이 지네 발처럼 징그러웠다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처럼 가짓수도 정체도 알기 어렵지만
슬픔은 고깃덩어리가 목구멍에 걸리도록 심술을 부리거나
기회의 순간에 발기부전을 일으키는 죄의식 같은 것이었다
슬픔은 통과의례로 포장하거나
기쁨과 섞어 희석할 수 없으므로
심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숙성되지만
결코 피와 살이 될 수 없는 슬픔,
몸통을 실에 묶어 날려 보낸 잠자리처럼
죽어서야 벗을 수 있는 슬픔이
너무 오래 살고 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감정이란 너무나 사적이고 주관적인 영역인 데다 순간적인 특성을 지녀서 오랜 시간 이성에 비해 하찮은 것이라 여겨졌다. 하이데거는 많은 사람들이 통상 감정이라고 부리는 것을 기분 또는 분위기라고 부르며 그것의 존재론적 지위를 바로잡으려 한다.1) 하이데거에 의하면 기분은 존재의 목소리이며 자신을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이다. 거시적인 기후 변화가 매일의 순간적인 날씨가 오랜 시간 쌓여서 형성되듯이 순간의 기분들은 주체와 주체를 둘러싼 세계와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존재론적 징후가 될 수 있다. 윤성관의 시는 특히, 슬픔의 존재론적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래서 유년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인 슬픔을 털어놓는다. 그것은 가족과 일상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사회와 시대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멜랑콜리는 개인의 정서이자 예술적 감수성이기도 하지만 실은 현대 문명 사회와 인간 실존의 본질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래서 그가 슬픔의 존재론적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사실은 현대 사회의 위기를 인지하고 인간이 지닌 몬래적인 불안을 회피하지 않고 대면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p. 시 14-15/ 론 116-117) <장예원/ 문학평론가>
1) 김동규, 「하이데거 철학의 멜랑콜리-『존재와 시간』에 등장하는 실존론적 유아론의 멜랑콜리」, 『현대유럽철학연구』(19), 2009. 4, 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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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다소 낭만적인 질문』에서/ 2024. 10. 8. <문학의전당> 펴냄
* 윤성관/ 서울 출생, 2020년『애지』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시집『호박꽃이 핀 시간은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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