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간격/ 김양아

검지 정숙자 2024. 10. 18. 00:55

 

    간격

 

    김양아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데

  우산 들고 서둘러 가도 이미

  너는 자박자박 빗속을 걸어갔을 텐데

 

  제때 닿지 못하는 시간과 거리가 있다

  어찌할 수 없어 다만 안절부절못하는

  고스란히 마음 젖는 것 외엔 달리 방법 없는

 

  뭐든 다 해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결국 마음뿐인,

  해줄 수 없음으로 자주 절망한다

 

  네게로 향한 징검다리를 건너며

  수시로 미끄러지는 나는

  늘 시리게 발을 적신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이 짧은 시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많은 말을 절제하고, 객관화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살다보면 이 세상엔 "제때 닿지 못하는 시간과 거리가 있"어 "뭐든 다 해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결국 마음뿐인,/ 해줄 수 없음으로 자주 절망"하는 순간순간을 맞게 된다. 이런 순간은 인간관계뿐만이 아니라 삼라만상 모든 것에 적용된다. 그래서 오해가 생기고 착각이 생기고 배반이 생기고, 애증이 생긴다. 그리고 그 영역은 어쩌면 신의 영역일지도 몰라 그녀는 "네게로 향한 징검다리를 건너며/ 수시로 미끄러지는 나는/ 늘 시리게 발을 적신다"라고 말한다. '발이 시린' 게 아니라 스스로 '시리게 발을 적신다'라는 이 시구 안엔 그동안 그녀가 모든 관계에 대한 온갖 주관적 감정, 자책감, 후회, 자기연민 등의 감정적 상황들을 어떻게 견디며, 견뎌왔는가를 잘 보여준다.

  내면은 과한 감정으로 들끓어도 그녀만의 특유한 '간격'으로 '가지런한 질서'를 유지하여 중용이나 관조처럼 보이게 하는, 이 점이 그녀의 시집을 관통하는 키포인트가 아닌가 한다. 안과 밖의 간격을 잘 유지하면서도 그 균형이 주는 멜랑콜리에 침식되지 않고 그 여운으로 오히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그 때문에 시집 전체의 흐름이 능동적이지 않음에도 수동적이거나 정체되어 있지 않고, 환기와 소통이 잘 된다는 점. 이 점이 그녀의 시집 전체를 흐르는 남다른, 참 좋은 핵심 기류인 듯하다.

 

  언어를 잘 사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생각을 잘 전달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헤럴드 블룸이 말한 "모든 시는 간-시이고, 모든 시 독해는 간-독해다"라는 걸 참 잘 활용하는 듯하다.

  이렇듯 김양아 시인은 자신의 장기인 '간격'과 '가지런한 질서'를 잘 살려 '세상 바깥에 앉아 창문하기' 방식으로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말을 시로 승화시켜 우리에게는 물론 자신에게도 고백한다. 그 고백은 하는 순간, 시인 자신은 물론 우리에게도 일탈(자기 성찰)의 기회를 주며 긴 여운을 남긴다. (p. 시 13 / 론 99-100) <김상미/ 시인>

 

  ※ '창문하다janelar'는 포르투갈어 동사로, '창문janela'이라는 명사에서 파생된 말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창문 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다' 혹은 '창문 밖을 바라보며 멍때리기'이다. <※ 이 시집의 해설(92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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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세상 바깥에 앉아 창문하기』 2024. 9. 27. <북인> 펴냄

 * 김양아/ 2014년『유심』으로 등단, 시집『뒷북을 쳤다』, 정독도서관 <사유의 풍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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