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아내/ 정여운

검지 정숙자 2024. 10. 8. 17:58

 

    아내

 

     정여운

 

 

  열두 자이던 장롱이 여덟 자로 갈걍갈걍해졌다

 

  이사할 때마다 벽에 부딪히고

  모서리에 찍히고 긁혔다

 

  장마철 물난리에 퉁퉁 불은 그대여

  내려앉은 서랍조차 팡파짐하구나

 

  처음 봤을 때는 

  뺨에 피는 부끄럼처럼 연연했다

  그러나 아양스러운 날들은 계속되지 못했다

  갈수록 오종종한 몸과 걸걸한 문짝 같은 목소리가

  내게 왁실거렸다

 

  몇 번의 곡절에도 꿋꿋하게 버텨온 그대여

  마음을 담았던 옷장 한 칸이 부서졌구나

 

  윗목을 그토록 지켜온 몸이 반쪽이다

 

  남들은 버리라지만 버리지 못한다

  버리지 못해서 버리지 못할 정이 들었다

 

  구석구석 삭아진 아내여

    -전문(p. 6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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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에세이집 『다알리아 에스프리』에서/ 2024. 6. 27. <지혜> 펴냄

  * 정여운鄭餘芸/ 경북 대구 출생, 2013년『한국수필』로 수필 부문 & 2020년『서정시학』으로 시 부문 등단, 시집『문에도 멍이 든다, 詩에세이집『다알리아 에스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