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이자이(李滋伊)/ 정여운

검지 정숙자 2024. 10. 8. 15:16

 

    이자이李滋伊

 

    정여운

 

 

  육십사 년 동안 이름이 없던 어머니

  열일곱에 시집가서 얻은 이름은

  연산댁이었다

 

  첫째를 낳고 상진이 엄마

  둘째를 낳고 승표 엄마

  셋째를 낳고 광표 엄마

  넷째를 낳고 임숙이 엄마

  다섯째를 낳고 정표 엄마

 

  팔순 노인이 되자

  드디어 요양원에서 찾게 된 이름

  오얏 이, 불을 자, 저 이,

  이자이

 

  영정에 새겨진

  화장터 전광판에 올라온

  묘비에 새겨진 이름

  이자이李滋伊

 

  어머니는 어머니를 버리기 위해서

  평생을 사신 것이다

    -전문-

 

  발문> 한 문장: 시에세이집 『다알리아 에스프리』는 에세이와 시가 번갈아 나온다. 작가는 수필로 문단에 발을 들였으나 시의 매력에 빠지면서 세상이 온통 시로 보였다고 고백한다. 작가가 에세이에서 토로하는 내면의 고백은 격정의 호흡이 여과되면서 맑고 빛나는 시편들을 건져 올린다. 시적 대상과 하나가 되어 몰입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결과물이다.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서사가 생명과 함께 신비한 힘을 얻는 순간이다. 서로 배경이 되고 배후가 되면서 안과 밖아 풍성해진 삶의 이면들이 교감하고 수렴하며 성찰과 형상화의 미학을 견인한다.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며 데우는 행위인 토렴이 떠오른다. 작가는 한과 통증을 진술과 묘사의 온도를 높여가면서 스스로는 물론 타인까지 구원과 치유를 담당한다.

  흔히 문학을 상처에 핀 꽃이라고 한다. 이 그악한 역설을 설명하려면 사물을 호명하고 환기할 때 아픔의 깊이가 농익은 공명으로 울려야 한다. 작가가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치유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통증은 자생력이나 외부에서 투여하는 약물로 치료가 가능하듯 글쓰기의 미덕이 치유라면 작가는 소임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p. 시 94-95/ 론 243 -244) <오서윤/ 시인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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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에세이집 『다알리아 에스프리』에서/ 2023. 6. 27. <지혜> 펴냄

  * 정여운鄭餘芸/ 경북 대구 출생, 2013년『한국수필』로 수필 부문 & 2020년『서정시학』으로 시 부문 등단, 시집『문에도 멍이 든다, 詩에세이집『다알리아 에스프리』, <새얼문학>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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