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세상이 단순해 보였던 때가 있었다
카를로 로벨리 作/ 김정훈 譯
단테가 『신곡La commedia di dante alighighieri』을 썼을 당시 유럽 사람들은 세상이 천상의 위계질서를 비추는 흐릿한 거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위대한 신과 천사들이 하늘을 가로질러 행성들을 이끌고 미천한 인간들의 삶과 사랑, 두려움에 관여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우주 한가운데에서 숭배와 반항, 회개 사이를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우리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 후 몇 세기 동안 우리는 실재하는 세계의 여러 측면을 이해하고, 그 속에 숨은 원리들을 발견하며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전략을 찾아냈습니다. 과학적 사고를 통해 복잡한 지식의 전당이 만들어집니다. 물리학은 앞장서서 지식들을 통합하는 역할을 했고, 세계는 입자들이 여러 힘에 의해 밀고 당기며 날아다니고 있는 광활한 '공간'이라는 이미지를요.
여기에 패러데이Michael Faraday와 맥스웰James Clerk Maxwell은 전자기 '장'을 추가했습니다. 장은 공간에 퍼져 있는 실체로, 멀리 떨어져 있는 물체들은 이 '장'을 통해 서로 힘을 주고받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조차도 시공간의 기하학적 구조인 '장'에 의해 전달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참으로 명확하고 아름다운 종합이죠.
세상은 수많은 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눈 덮인 산과 숲, 친구의 눈길, 희뿌연 겨울 아침 지하철의 굉음, 우리의 불안한 갈망, 노트북 자판 위에서 춤추는 손가락, 빵의 맛, 세상의 아픔, 밤하늘, 무수한 별, 해질녘 군청색 하늘에 홀로 반짝이는 금성··· 이 만화경 같은 바탕에 있는 구조와 무질서한 현상의 베일 뒤에 숨은 질서를 마침내 발견했다고 우리는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이 세상이 단순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필멸의 생명체인 우리가 품은 커다란 희망은 짧은 꿈에 불과했습니다. 그전 물리학의 개념적 명료함은 양자에 의해 사라졌습니다. 세상은 고전 물리학이 설명하던 그런 게 아니었던 겁니다.
우리는 뉴턴의 성공이 가져온 환상에 사로잡혀 행복한 꿈을 꾸다가 문득 잠에서 깨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깨어남 덕분에 우리는 다시 과학적 사고로 박동하는 심장이 되었습니다. 과학적 사고는 이미 얻은 확실한 사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고이며, 그 힘은 항상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다시 시작하는 능력에 있습니다. 더 유효한 설명을 찾기 위해서라면 세상의 질서를 뒤집는 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것에 다시 물음을 던지고 모든 것을 다시 뒤집어엎는 능력이죠.
세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것이 과학의 힘입니다.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es가 지구를 떠받치고 있던 받침을 없애고,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를 하늘로 띄워 회전시키고, 아인슈타인이 시공간의 경직성을 해체하고, 다윈이 인간의 특별함이라는 환상을 벗겨낸 이래로 세상에 대한 그림은 더 효과적인 형태로 끊임없이 다시 그려져왔습니다. 세계를 근본적으로 재창안하는 용기, 이것이 바로 과학의 미묘한 매력이 되어 내 청소년기의 반항적인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p. 9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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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를로 로벨리 지음 | 이중원 감수 | 김정훈 옮김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2023년 12. 1. 초판 1쇄 | 2023. 12. 15. 6쇄 발행 | (주)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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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를로 로벨리(지은이 1956~, 이탈리 아 출생)/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자. 양자이론과 중력이론을 결합한 '루프양자중력'이라는 개념으로 블랙홀을 새롭게 규명한 우주론의 대가로 '제2의 스티븐 호킹'이라 평가받는다. 1981년 볼로냐대학교에서 물리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1986년 파도바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학교 이런 물리학 센터 교수이자 프랑스 대학연구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모든 순간의 물리학Sette brevi lezioni di Fisica』『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La realta non e come ci appare』『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Et si le temps n'existait pas?』등이 있다. 2014년 이탈리아에서 『모든 순간의 물리학』이 첫 출간된 이후 그의 책들은 종합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영국, 미국, 프랑스,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번역되어 13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 바 있다. 이는 과학책으로 유례없는 기록이다.
* 김정훈 옮긴이/ 서울대학교에서 서양철학을 전공하고 고전어와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죽음: 이토록 가볍고 이토록 먼』 『우리와 그들의 정치』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외 여러 권의 책을 옮겼다.
* 이중원 감수/ 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 교수. 주요 연구 분야는 과학철학과 기술철학이며, 과학기술이 사회와 맺는 관계를 다각도로 고찰하고 있다. 양자이론, 나노 기술, 로봇 공학. 인공지능 등 어려운 과학이론과 첨단기술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기 위해 강연 · 언론 기고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물리학 학사 · 석사학위를 받았고, 동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 과정에서 과학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핬다. 한국과학철학회 회장과 한국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학』(공저), 『인공지능의 윤리학』(공저), 『인공지능의 존재론』(공저), 『필로테크놀로지를 말한다』(공저), 『포스트휴먼과 융합』(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모든 순간의 물리학』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을 감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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