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서재>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부분)
이영산/ 작가 · 몽골여행전문기획자
마르코 폴로가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몽골의 역참 덕택이었는데, 그는 당시의 역참과 우편국의 모습을 이렇게 서술한다.
"황제의 사신이 왕도에서 어디로 가든 25~40마일마다 역驛과 우편국이 있고, 역마다 사신이 묵고 갈 크고 아름다운 게르가 있다. 그 역참들을 거쳐서 10일 안에 100마일 거리 떨어진 곳에서 소식이 전해져 온다."
백일 거리의 곳에서 십일 만에 소식이 온다는 것은 유럽인들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역참간의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어야 하는지 몽골인들은 잘 알았고, 특히 말의 능력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공문서를 보낼 때는 봉투 위에 특별한 표시를 하곤 했는데, 그 표시가 우표로 남게 된다. 마르코 폴로의 글은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용을 자극했고, 오늘날 우리에게는 그가 살던 세계의 모습을 이해하고 그 시대인들이 가졌던 세계관의 단면을 살피는 지식의 원천인 것이다.
"나그네가 오는 것을 보면 잡울 나가서 자기 아내에게 낯선 사람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들어주라고 한다. 그리곤 나그네가 집에 머무는 동안 돌아오지 않는다. 여러분에게 말하지만 나그네가 사흘 동안 그곳에 머물며 그 불쌍한 친구의 부인과 동참하는 일은 흔히 일어난다. 나그네는 자기가 집에 있다는 표시로 기둥에 모자를 걸어놓는다. 이 표시가 보이면 주인은 절대로 집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카물, 티베트, 가인두 지방의 "아내를 빌려주는 풍습"에 관한 이야기이다. 중국 서쪽지방의 이 풍습을 기록해 지금까지도 몽골에 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데, 정작 마르코 폴로는 인간의 말초 감각을 자극하는 사례가 아니라 반대의 취지로 기록한 것이다 "몽골인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의 아내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것은 매우 사악하고 비열한 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죽으면 아들은 자신의 생모가 아닌 한 아버지의 부인을 아내로 삼고, 형제가 죽으면 그 부인도 취한다는 형사취수제兄死聚嫂制는 유목민의 척박한 환경이 만든 문화이지 성적인 쾌락과는 차원이 다르다. 다른 문화, 타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은 여행의 진정한 의미인지도 모른다. (p. 15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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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여는세상』 2024-봄(89호)호 <예술가의 서재> 에서
* 이영산/ 작가, 몽골여행전문기획자, 저서『지상의 마지막 오랑캐』, 몽골 정부 공로감사패 수상, 현) 도서출판 <꿈엔들> 대표, 신동엽문학관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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