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미켈란젤로(1475-1564, 89세)
큰 대리석의 부름이 마음을 쉽게 끌고 갔다.
돌 하나에 팔이 나오고, 돌 하나에 다리가 나와
밤 늦게까지 미켈란의 영혼을 붙잡고 있었다.
그건 돌이 아니라 단단한 살점이었다.
금방 산에서 데려온 돌들은 미켈란의 망치질에 잘 순응했다.
불꽃을 튀겨내면서 자신의 살점을 떨어내주는 대리석
오래된 돌일수록 마음을 사로잡아 야망을 더욱 부채질한다.
사람의 늘어나는 주름만큼 돌도 사람을 닮아가는 육신,
그것은 이미 예비된 사람의 환생인 것이다.
-전문-
▶생가生家, 카프레세 미켈란젤로를 찾아가다(발췌) _박선옥/ 시인
미켈란은 신장 결석이 따라다녔다. 돌가루는 그의 입을 통해 결석으로 뭉쳐지는 고통을 주었다. 아욱 뿌리, 아욱 잎사귀, 푸성귀들, 미켈란이 견디기에는 별 도움이 안 되었다. 그는 돌을 감정하고, 돌의 흠결을 덜어내고, 돌에 영혼을 불어넣을 수 있는 진정한 치유사가 되어 갔다. 조카 레오나르도(1452-1519, 67세)는 정기적으로 와인을 부쳐주었다. 율리아스 2세의 우유부단함을 견디는 시련도 와인과 고향이 있기 때문이었다. 조카가 보내주는 와인이 최적이 아닐 때, 그는 짜증과 트집을 곧잘 내기도 했다. 그는 한 명의 조카로 인해 평생 삼촌이 되어본 것이다. 또한 와인은 목적의식이 담겨 있었다. 파울루스 3세와의 유년 시절을 다리놓게 해 주기도 했다. 황혼기에 접어든 르네상스를 이겨내기엔 나름의 무기와 처세술이 필요했다. 파울루스 3세는 위대한 로렌초 대공의 동생 줄리아노의 서자이다. 미켈란이 15세 때 "산마리노 조각 정원학교"에서 가족 구성원으로 함께 만난 사이이다. 둘은 짬짬이 유년으로 돌아가 말을 낮추고 와인과 치즈, 청어살을 뜯으며 시대를 이겨냈다. 이때의 예술가들은 활기를 잃고 매너리즘의 양식에 젖어들은 시점이었다고,
사양길에 접어든 그레상스, 사다리와 비계에서 한 시대를 보낸 미켈란, 그는 신의 결정판을 위해 희생양으로 태어난 것일까. 비계 위에서 라오콘의 자세처럼 뒤틀어져 살기를 수십 년, 천정에 바짝 다가가 머리를 최대한 뒤로 젖혀야 했고, 휘어진 전신은 턱수염과 붓을 하늘로 향해, 또 물감이 얼굴로 계속 튀어 내려야 제대로 된 자세임을, 그래야 진척이 있음을 확신했다. 누군가는 그를 칭해 "신神"이라 했다. 이런 생활이 신의 범주라면 그는 신의 호칭을 버릴 것이다. 아니 신이 보냈다고 해도 수백 평방미터의 천정만 바라보는 삶은 신의 실수 아닐까. 그래서 또 동생에게 심중을 토로했다.
"내 생활은 지금 말이 아닐 정도로 힘들고, 몸도 많이 지쳐 있다. 내게는 친구도 하나 없고 있을 필요조차 없다. 밥 먹을 시간도 제대로 없다. 그러므로 너는 또 다른 걱정거리로 나를 괴롭혀서는 안 된다. 지금 내 일만으로도 너무 벅차다. (p. 시 162/ 론 161-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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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여는세상』 2024-여름(90호)호 <예술 기행> 에서
* 미켈란젤로(피렌체 공화국 카프레세,1475-1564, 89세)/ 대표작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다비드상> 등
* 박선옥/ 1993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 1994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내가 한 줄기 바람일 때』『도경역』, 에세이집 『그림, 시끌하게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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