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죽도록, 중랑천/ 이소연

검지 정숙자 2024. 9. 3. 01:20

 

    죽도록, 중랑천

 

     이소연

 

 

  여름엔 속이 훤히 보인다

  당신이 그만큼 맑다는 뜻이다

 

  어디 모래가 많은지

  어디 안장 없는 자전거를 버렸는지

  내가 다 안다고 믿는다

  당신이 이렇게나 맑은데

  모르면 다 내 잘못이겠지

  기록하지 않는 이 밤 어디쯤

  물고기 떼처럼 리듬체조를 한다

 

  기록하지 않는

  이 밤 어디쯤에서

 

  당신은 나를 비난한다

  잔소리 좀 그만해!

  그런데도 우리는 중랑천을 걸으면서

  '다정한 것이 무엇일까'

  '다정은 어떻게 생겼나'

 

  물소리가 소음이구나

  불어난 중랑천이 장관이구나

 

  여름이 흙탕이다

  당신이 그만큼 엉망진창이란 뜻이다

  속을 모르겠다

 

  화낼 건 다 내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은 믿을 게 못 된다

 

  붉으락푸르락하는 것이 섞여 흐른다

  6호 태풍 카눈이 지나가고

  웅덩이엔 쓸려가지 못한 물고기들

 

  중랑천은 범람하지 않았다

  동부간선도로도 통제하지 않았다

  찌르르 찌르르 우는 풀벌레들 씹고 사는

  너구리 세 마리를 바라본다

 

  오늘 아침 뉴스에는 양식장 우럭이 뒤집어져 있다

  가둬놓고 죽이는구나

 

  거기 죽을 자리가 아닌데

  너구리에게 밥을 주는 온전한 사람이 많아진다

 

  죽도록 미워하고

  중랑천 끝까지 걸어가는 동안

  죽도록 사랑하고픈 마음이 생기고 난리다

      -전문(p.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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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여는세상』 2024-여름(90호)호 <시심전심詩心傳心/ 근작시> 에서

  * 이소연/ 2014년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 』『거의 모든 기쁨』, 산문집『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