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감옥
백연숙
언제 들어왔는지
차고 푸른 달이 거실까지
창살 자국을 찍어 놓았다
달은 언제나 젖은 발이었다
물 마시려고 나오자
뒷걸음질 치는 발자국들
가느다란 발목을 어루만져 본다
어두울수록 달의 발자국 움푹 파이고
바닥의 물기 마를 새 없는지
달빛은 고양이 자세로 한 발짝 두 발짝 우아한데
환하게 불 켜진 거실에서
물 마시다 말고 스위치를 내린다
저편 어둠 속에서 보이는,
베란다 창살 감옥에 묶인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거실 창문에 맺히는 여자
-전문 (시집『십 분이면 도착한다며 봄이라며』 2024. 파란)
* <이달의 시 현장 점검> 中 (p. 266-267)
- 좌담: 오은경 · 정재훈(사회) · 전호석
---------------------------
* 『현대시』 2024-5월(413)호 <이달의 시 현장 점검/ 좌담> 중에서
* 백연숙/ 시인, 1996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 오은경/ 시인, 2017년 『현대문학』로 등단
* 정재훈/ 문학평론가, 201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 전호석/ 시인, 2019년『현대시』로 등단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명시인/ 함명춘 (0) | 2024.08.10 |
---|---|
김춘식_가볍고 가벼워서 세상의 그 누구도···(발췌)/ 나무늘보 : 함명춘 (0) | 2024.08.10 |
이철주_신록의 밀어와 범람하는 폐허들(발췌)/ 남이 될 수 있는 우리▼ : 이담하 (0) | 2024.08.09 |
정과리_죽음에 맞선 순수의 형태들 1 (발췌)/ 다시 마카로니 웨스턴 : 전봉건 (0) | 2024.08.09 |
이지아_김정환이라는 시의 국가(발췌)/ 막간: 히페리온, 조금 덜 사소한 참회 : 김정환 (0) | 2024.0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