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이지아_김정환이라는 시의 국가(발췌)/ 막간: 히페리온, 조금 덜 사소한 참회 : 김정환

검지 정숙자 2024. 8. 8. 13:12

<2024, 제25회 현대시작품상 수상작> 中

 

    막간: 히페리온, 조금 덜 사소한 참회

 

     김정환

 

 

  너무나 행방불명이라서 죽음조차

  아마추어 행방불명인

  생이 있다.

  죽음이 억울하다.

  왜냐면 너무나 행방불명이라서

  생조차 아마추어 행방불명인

  죽음은 없다.

  정체성이 불확실한 문제라면

  정체성의 불확실을 정체성이 드러내지 않고

  정체성의 불확실이 정체성의 불확실로 드러나지 않는다.

  정체성의 불확실이 정체성의 불확실로 드러난다.

  그런 식으로도 불확실을 입증하거나 입증 받는 대신

  정체가 풍성해진다.

  신이 원래 없고, 없으므로 신이었지만

  신성神性이 내용과 형식과 그 둘의 조화에서 

  모두 신을 능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비일비재가 능가를 무마하는 어디쯤에서

  신의 모양이 정해지고 신이 신인 모양에 비해 아직

  괴기스럽고 그 점이 부단히 음악의 살이 되는 식으로만

  극복될 수 있고 시가 거기까지만 시로 말할 수 있고 그것만 해도

  음악의 괴기로서는 그 이상 고마운 일이 없을 것이다.

  '말의 괴기'가 말이므로 헛되이 말해졌다. 그리고

  음악의 괴기가 음악이므로 실하게 멀쩡해졌다.

  우리가 비일비재하게 사물을 보듯 신의 모양을 보고

  그 비일비재가 다른 이름이다, 천지창조의.

  아우슈비츠 이전에도 앞으로 보면 지금까지는

  해와 달과 새벽과 대낮, 인간 종이 잡아 먹은 자연의

  아름다움의 서열을

  글이 쓸 수 없고그림이 그릴 수 없고 음악이 노래할 수

  없고 연극이 연기할 수 없고 그 사실을 아는 것이 시의

  시작이고 새롭게 아는 것이 그 과정이었다.

  앞으로 보면 지금까지는 쓸 수 없기에 글이고 그릴 수

  없기에 그림이고 연기할 수 없기에 연극이고 그렇다

  지독한 파김치 반복이었다.

  아우슈비츠는 그것을 인간이 들켜버린

  글의 폐기인 글이고 그림의 폐기인 그림이고 연극의

  폐기인 연극이었다.

  사라지지 않으려 완고만 남은 법칙을 어떻게 깨지?

  자연사는 가장 자연다운 자연이고 자살한 사람들,

  참회하기 위해 그랬거나 참회 안 하려고 그랬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할 것 같다. 그런 죽음의 공동체가

  비로소 자연을 위한 자연일 것 같다. 그것이

  죽지않은 시인의 나날의 상상력이고 노래였던 것 같다.

  그래서 시인의 이름 원래 히페리온이다. 인간 무명無名

  가능성을 합한 것의 어딘가 짐승 혹은 신성표정 형식이 또한

  천지창조고 이야기를 삭제하는 이야기를 삭제하는 이야기를

  끝내 삭제할 수 없는 것이 인간 스스로 내린 벌이고

  스스로 창조한 지옥이다.

  옥스포드가 상상력 가벼운 곳이고 캐임브리지 국가

  재정을 들여서라도 학구적으로 파고 드는 곳이니

  같은 제목 같은 의도 같은 기획이라도 책 두께 차이가 큰데

  두 배를 넘지 않는다면 나는 캐임브리지 편이지만

  영국문학사가 두꺼운 책 15권이고 중국역사가 그 보다

  더 길다면 어떻게 읽겠나 영국문학보다 더 긴 영국문학사,

  중국대륙보다 더 큰 중국역사를? 하지만 끝없이 읽는 것이

  끝없이 삭제하는 이야기고 안 읽는 것이 죽음일 것 같다.

  생애 자체가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겠으나 안 읽으면 생 자체가

  끝없이 죽음에 실패한 생 이야기일 밖에 없을 것 같다.

  낭만이 추악한 생의 가짜로 아름다운 변명으로 들린다.

  상상력이 포식 서열을 낮추며 흙의 그것(포식, 아니면 상상력,

  아니면 그 둘의 합 혹은 같음?)에 정말 달하지는 않고, 달할 수

  없음을 스스로 알지만 끝까지 달하려 하면서 비로소

  먹이 사슬 벗은 아름다움의 진짜 서열을 아는 것 같다.

  시인의 이름 아직도 헤페리온이다. 애비 없는 아이를

  낳고 또 낳은 모국어의 천역賤役을 모르고

  내용의 옛날을 능가하는 초록의 목각木刻보다

  더 초록인 목각의 초록을 아직 모른다.

  낯선 신생을 모르고 인간의 건축 언어 아니라

  건축이라는 언어, 장르들 너머 과거에서 현재로

  들어서는 것이 동시에 미래로 들어서는,

  건축하는 언어를 아직 모른다.

  그러기도 전에 그림 언어 아니라 그림이라는

  언어로 작곡하고 그리스, 로마 언어 아니라

  그리스, 로마라는 언어가 비일비재 생겨나는

  사태를 아직 모른다. 내용과 형식을 능가하는

  편집을 아직 모르고 제국주의가 아름다움에 이르는

  해묵은 케케묵은 이야기를 아직 모르고 다만 그의

  독보獨步가 무지개 색깔로 현란하다.

  히페리온은 그리스 신화 12명의 티탄들 중 하나로 여동생과 살을 섞어

  태양신 헬리오스, 달의 여신 헬레네, 그리고 새벽의 여신 에오스를 낳았다.

  세상에 좀 더 붙잡히고 당겨져 금 가야 할

  정체, 분명한 나의 총체의, 채워가는 정량定量 혹은

  가꿔가는 최적最適 아니라

  끝까지 미흡한 질량質量이 끝까지 난해한

  나의 정체의 총체.

  두드러질수록 악기들 각자 이를테면

  피아노가 바이올린이고 바이올린이 피아노인 것처럼.

  베토벤 op. 14-1은 소나타 9번이지만

  현악사중주 판도 있다. 베토벤 현악사중주

  1번 작품번호는 18-1이니 정식 목록에 없는 이

  판이 끝까지 진전하는 '음악=생애' 그 자체인

  베토벤 자신의 서곡일 수 있다.

  높은 것은 낮은 것의 구체를 더 구체적으로

  하느라 높다.

       -전문- 

 

    * 심사위원 : 오형엽  김언  안지영  양순모

 

  김정환이라는 시의 국가_법과 영토, 쓰는 자와 듣는 자(발췌)_ 이지아/ 시인

  마침내 그는 시를 쓰면서 듣는 자가 된다. 말하는 자와 듣는 자를 동시에 실행한다. 그에게 시는 음악이었다. 그동안 시가 감당했던 삶의 고통은 신적인 영역(초월적)이 아니라, 인간의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정체의 총체/ 두드러질수록 악기들 각자 이를테면/ 피아노가 바이올린이고 바이올린이 피아노인 것처럼."(「막간: 조금 덜 사소한 참회」) 언어는 음악처럼 움직인다. 눈이 오고 아프고, 세상이 순수하게 환해지는 현상이다. 그래서 그가 외치는 시대의 문제들은 그 힘을 잃고 악보가 된다.

  이 대상들은 "음악", "식민지", "파탄의 무늬 초록"과 같은 연장선에서 시적 공동체로 구성된다. 덧붙여 아주 사소한 개인의 감정까지도 통합한다. 시인은 이들을 같은 무게로 두기 때문에 그의 시는 기존의 이데올로기와 혁명으로부터 벗어난다. 그의 시는 뺵빽하고, 틈이 없다. 애도와 슬픔을 처단한다. 슬퍼하다가 세계가 끝날지도 모른다. 새로운 국가를 위해서는 시작이 아니라, 죽음과 끝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는 쇠처럼 단단하다. 불에서 나온 쇠처럼 휘어지지 않고 여유가 없다. 김정환은 시의 "제국"을 언제나 다시 건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동안의 역사적 시간은 "음산한 위트"였다고 생각한다. (略)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는 2,400˚C의 불을 다룬다고 한다. 맘에 들 때까지 엄격하고 냉정한 태도로 담금질을 지속한다. 바라건대, 시인은 "다음 세대"를 위해 시의 국가를 준비하지 말고 , 다음 현장에서 직접 시를 이끌어가길 기도한다. 다시 말한다. 김정환은 불이다. 뜨겁게 감동스럽다. 언젠가 팔뚝 굵은 다른 대장장이가, 김정환이라는 불을 이용해 새로운 쇠를 만들지도 모른다. (p. 시 136-139/ 론 188-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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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4-5월(413)호 <제25회 현대시작품상 특집/ 수상작(中)/ 작품론> 에서 

  * 김정환/ 1980년『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지울 수 없는 노래』『황색예수전』『회복기』『좋은 꽃』『해방서시』『우리, 노동자』『기차에 대하여』『사랑, 파티』『희망의 나이』『하나의 이인무와 세 개의 일인무』『노래는 푸른 나무 붉은 잎』『텅 빈 극장』『순금의 기억』『김정환 시집 1980~1999』『해가 뜨다』『하노이-서울 시편』『레닝의 노래』『드러남과 드러냄』『거룩한 줄넘기』『유년의 시놉시스』『거푸집 연주』『내 몸에 내려앉은 지명』『소리 책력冊曆』『황색예수 2』등

  * 이지아/ 시인, 2015년 『쿨투라』로 등단, 시집『오트 쿠튀르』『이렇게나 뽀송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