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돌의 재난사▼/ 이재훈

검지 정숙자 2024. 8. 7. 16:33

 

    돌의 재난사

 

     이재훈

 

 

  당신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요? 그저 과거일 뿐, 왕궁의 기억도 걸인의 기억도.

 

  땅에 있기 전에는 모두 엄마의 팔에 안겼죠. 돼지우리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어요. 당신은 허영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에요.

 

  마구간으로 가는 길을 아시나요? 당신은 궁륭에 있었어요. 길에서 태어나 채찍에 몸이 패였죠. 누구보다 먼저 종소리를 들었죠.

 

  장대한 땅. 끝없는 바다. 모든 공포 속으로 가보았죠. 세상에는 거인이 너무 많아요.

 

  언어가 오염되고 있어요. 착한 언어를 쓰시나요. 솔직해지세요. 모든 통곡에는 이유가 있어요.

 

  시기. 불만. 짜증. 정욕. 고통의 언어를 숨기지 마세요. 위로하고 축복하고 싶으면 가장 나은 것으로 해주세요. 위대한 말은 꿈을 나눠 갖는 것이에요.

 

  이 산지에서 저 산지로. 기쁜 발걸음으로. 어렵고 까다로운 말들 사이에서 온몸을 굴려요. 돌로 돌로 가다 보면 침묵을 만날지도 몰라요.

     -전문(p. 34)

 

   제목 끝에 [] 표시가 된 작품은 시인들이 직접 뽑은 1~2년 내의 근작대표시입니다. 이 작품은 현대시 작품상 후보작으로 검토됩니다.

 

  --------------------------

  * 『현대시』 2024-5월(413)호 <신작특집> 에서

  * 이재훈/ 1998년 『현대시』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