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리스트
김안
그는 어디에 있습니까?
검은 창밖이 갑자기 환해진다.
둥근 빛.
세차게 움직이며 뒤흔드는 빛.
밤의 들판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진다.
머리들.
형상 없는 얼굴을 가린 아마포 펄럭이는 소리들.
찢는 소리들.
나뭇가지 부러지는,
사방에서 나무 쓰러지는 소리들.
한때 그는 성난 악기였습니다
검은 나무와 가느다란 쇠줄을 얼기설기 엮어 만든.
후렴구만 기억하는 노래처럼
결국 기억되는 것은 죄와 치욕의 목록이겠지만,
그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
피와 먼지로 엉겨 붙어 있어도,
시간과 바람이 미세한 금을 서서히 전진시키더라도,
그보다 더 세차게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지,
이것은 여전히 정직한 거울,
소리들, 빛들이.
그의 책은 금서가 되었습니다.
세찬 바람에 무너진 책의 탑에 멈춰 서서
그것을 남몰래 펴 보는 황홀.
보세요. 어린 소녀가 할머니로 태어났어요.
매일의 창문 너머를 두근거리며 바라만 보는 왕관앵무처럼,
머리에 솟은 부드러운 뿔을 가르며
(그것은 한때 유행이었지.)
운명과 타락 사이에서
버려졌던 날 선 말들을 고르며,
여기는 언어의 탱크
밑바닥.
흰 페이지들로 손목을 긋는
붉은 밑바닥.
이내 그는 말하겠지만,
말하며 도망치지만,
죽음이 뛰어온다, 이전의 삶을 물고선.
나는 황홀의 끝에서 그를 덮고선
당신은 여전히 위험한 모험이군요, 그저
매일의 들판으로
생각하소서, 전진하소서.
하지만 여전히
여긴 피와 먼지가 엉긴 거울들로 가득한 방.
투명한 설탕시럽에 모여드는 개미들을 불사르며 노는 아이들의 동공처럼
저주의 주술을 외며 목구멍으로 말려 들어가는 붉은 혀처럼
소리들, 빛들이······
그게 외려 사람의 일이라서,
사람의 광기라서.
-전문, (시집『Mazeppa』, 2024, 문학과지성사)
* <이달의 시 현장 점검> 中 (p. 205-207)
- 좌담: 서윤후 · 이지아 · 박동억(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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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4-4월(412)호 <이달의 시 현장 점검/ 좌담> 중에서
* 김안/ 서울 출생, 2002 『현대시』로 등단
* 서윤후/ 전북 정읍 출생, 2009년 『현대시』로 등단
* 이지아/ 서울 출생, 2015년『쿨투라』로 등단
* 박동억/ 2016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평론 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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