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리움은 늙지 않네
백무산
한두 집 떠나더니
잠시 아들네 집 다녀온다더니
수술하고 금방 돌아온다더니
딸네 집 가서 겨울나고 설 대목 안에 꼭 온다더니
어느새 마을 전체가 비었네
이 마을 실거주자는 묶인 개 한 마리와
감나무 까치집에 까치 두 마리
아랫마을에서 반장 집 사위 되는 이가
어쩌다 경운기 끌고 잠시 다녀가고
개밥 주러 온 승용차가 어쩌다 다녀가고
마당엔 털다 만 깻단들 바람에 흩어지고
어무이 아부지 땀 배인 집 나고 자란 마을
언젠가 다시 돌아올 거니까 다짐 두었지만
삶은 버겁고 기억도 낡고
텃밭에 열무 배추 갈아 놓았지만 잡초만 뒤덮고
시린 초겨울 하늘은 퉁퉁 부어 있고
주인이 오지 않아 장독들 풀 죽어 있고
뒷마당 대나무는 아궁이까지 뚫고 올라와 있고
명아주 마른 미궁은 처마에 닿아 있고
어둠이 와도 불 한 점 켜지지 않고
찬바람 불어도 연기 나는 굴뚝 하나 없고
얼룩투성이 달은 무너진 스레트 지붕에 붙들려 있고
멀리서 부엉이 유령처럼 울고
그러나 그러나 나의 그리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고
내 그리움은 여전히 저 달빛 고개를 넘고
죽어 떠난 강이 출렁이며 돌아오듯이
황폐한 땅에 숲은 다시 돌아올 약속을 하듯이
오래된 강은 한 번도 낡은 적 없듯이
오래된 숲은 언제나 이제 막 태어난 것이듯
내 그리움은 낡아 본 적이 없네
내 그리움은 한 번도 늙어 본 적이 없네
소 한 마리 끌고 고개 넘는 내 그리움은
-전문(p. 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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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파란』 2024-봄(32)호 <poem>에서
* 백무산/ 1984년 『민중시』로 등단, 시집『만국의 노동자여』『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