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남은 자의 의문/ 김조민

검지 정숙자 2024. 7. 21. 01:34

 

    남은 자의 의문

 

      김조민

 

 

  여기가 어디인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발을 헛디딘 것일까요

 

  의자가 있었습니다

  나는 구부정한 등이었죠

 

  저기 눈길에서 망설이고 있는 늙은 개처럼 땅 너머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작은 돌멩이 옆에 어른거리던 그림자 몇이 거대한 나무의 잎사귀였는지 아무도 모르게 피고 졌던 이름 모를 꽃이었는지 이제는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믿지 못하는 마음 한 귀퉁이가 빛에 바랬어요

  쓸쓸한 나머지 부분이 마지막 힘을 냅니다

  무엇이 본질이었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모든 것을 사랑했습니다

  지나 버린 빛을 쫓아 서둘러 담장에 오르기 전까지의 결심은 아주 쓸 만했어요

 

  남은 것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디로 뛰어내릴지 알 수 없게 된 이후 돌아갈 수 없는 것에 대해 사랑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없습니다

 

  붉은 돛들이 활짝 육중한 돛대 위에서 바람 반대편으로 돌아갑니다*

      -전문(p. 33)

 

   * T. S. 엘리엇의 시「황무지」<3 불의 설교> 중에서

  ------------------

  『계간파란』 2024-봄(32)호 <poem>에서

  * 김조민/ 2013년『서정시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이랜더/ 변혜지  (0) 2024.07.21
내 그리움은 늙지 않네/ 백무산  (0) 2024.07.21
연차휴가/ 유현아  (0) 2024.07.21
정체전선/ 류성훈  (0) 2024.07.21
생은 무거워/ 이영춘  (2) 2024.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