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등반가 K에게
김종태
파도가 바다에만 있는 게 아니라고 그에게서 들은 적 있다 슬픔이 이승에만 있는 게 아니라고 그에게서 들은 적 있다 그리움이 사랑에만 있는 게 아니라고 그에게서 들은 적 있다 그의 이력을 눈치 챈 누군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어느새 그는 먼 산정 위 전신주로 서 있었다
오르고 또 내리는 동안 그의 청춘은 모래알처럼 산산조각 났다 그는 자신의 몸에서 부스러져 내린 모래알을 모아 거대한 부처를 만드느라 주말마다 단단한 절벽을 기어올랐다 심산의 기도처를 찾는 수도자처럼 수시로 기어올랐다 집채만 한 돌의 둔감함을 견디며 돌담의 층계를 맨발로 더듬었다 결국 올라간 그 끝에서 투명한 실오라기를 붙잡은 거미처럼 빙글 흔들리다 다시 사뿐한 하강을 준비하였다
아, 눈부신 회벽은 돌아가고픈 고요한 자궁의 점막이었을까 부수고 싶은 병든 관다발이었을까 이러저러한 질문들을 떠올리던 그는 밧줄 쥔 손을 슬쩍 놓아 보기도 하였다 절 잃고 떠도는 반가사유상처럼 해를 향해 엄지를 펴며 잠시 입정入定에 들어간 듯해 보였다
오랜 세월 부서져내려 더 작아질 데 없었던 그,
오랜 세월 혼자여서 더 고독할 수 없었던 그,
오랜 세월 가난하여 더 잃을 것 없었던 그,
단단한 절벽 사이 파도를 헤치며
구름다리 출렁이는 바람을 견디며
하늘나라 향한 숲의 숨결을 품으며
그 마른 근육이 허공 속에 먼지 폭풍을 일으켰다
-전문, ( 웹진 『시산맥』, 2022-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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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문화』 2024 여름(70)호 <정예 시인/ 근작시> 에서
* 김종태/ 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떠나온 것들의 밤길』『오각의 방』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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