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우로보로스/ 정두섭

검지 정숙자 2024. 7. 13. 00:48

 

    우로보로스

 

     정두섭

 

 

  병 속에는 쥐가 있고 뱀이 있고 뱀이 된 쥐는 없고 쥐를 삼킨 뱀만 있고 좁은 병 못 빠져나와 뱀은 쥐를 뱉고 뱉고

 

  구겨진 몸 다리고 구겨질 몸 걸어놓고 옷걸이 물음표만 남기고 사라질 때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먼저 온 후회였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시인이 불온함을 위한 시적 장치로 사용하는 것은 골계滑稽이다. 알다시피 골계란 익살이나 우스꽝스러움, 농담과 유머 등의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는 미적 범주의 하나로 숭고와 비장, 우아와 함께 예술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미적 가치라 할 수 있다. 일찌기 조동일은 자신의 문학 연구 방법론을 명시한 여러 저서를 통해 문학작품에는 있어야 할 당위와 있는 것으로서의 현실이 서로 융합하거나 상반함으로써 조화와 갈등의 관계를 이루어 각각의 미적 범주(우아미, 비장미, 숭고미, 골계미)를 결정한다고 했다. 이중 골계미는 당위보다 현실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우아미와 유사한 속성을 지니지만 조화보다는 갈등과 대립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비장미와 친연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덧붙여 조동일은 골계를 해학에 해당하는 사나운 골계로 구분하면서 전자는 인간성에 대한 긍정으로 나아가고 후자는 경화된 규범의 파괴로 나아간다고 설명했다. 해학은 자기 부정을 통해 자기 긍정을 지향하는 것으로 대상을 배척하지 않고 관조적인 자세로 감싸 안는 너그러움에 초점을 놓지만, 풍자는 불합리한 권력이나 체제를 공격하기 위해 날카롭고 노골적인 공격 의도를 감추지 않는다. 화해와 포용이든 해학과 풍자의 골계미가 지닌 주요 특징은 웃음을 도구로 삼는다는 데 있다. 웃음을 유발하는 재담과 우스꽝스러움이 정두섭 시인의 전부는 아니지만, 시집을 통어하는 주된 장치임은 분명하다. 또한 이러한 시적 정치가 비루한 현실을 긍정하며 섣부른 화해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유의미하다.

       *

  우로보로스의 원형은 자기 꼬리를 물어야만 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삶의 굴레로 작동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이 시에서 형상화된 "쥐를 삼킨 뱀"이 "좁은 병 못 빠져나와 뱀은 쥐를 뱉고 뱉고" 다시 쥐를 삼킬 수밖에 없는 상황처럼 말이다. 이 구절은 아이러니로 인한 웃음을 유발하는 한편 무한한 고통의 영속을 우리 앞에 현시한다. 죽음과 삶이 영원히 회귀하는 것처럼 보이는 저 병 속의 사건은 벗어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반복하는 우리 삶을 알레고리화한 것으로 읽힌다. 이는 두 번째 수에서 "구겨진 몸"과 "구겨질 몸"이 "물음표만 남기고 사라"지는 순간을 포착하는 시인의 응시와 결합하여 더욱 분명해진다. '몸'이 수행하는 일상의 반복은 무한한 삶의 순환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사유할 여유를 주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존재는 "물음표만 남기고 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충족적인 우로보로스는 정두섭 시인의 시 속에서 구겨지고 구겨질 존재로 스르로를 부정해야만 하는 주체, 그리하여 타자화의 양태로 내몰린 존재로 전치된다. (p. 시 13/ 론 104-105 · 106-107) <이병국/ 시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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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시집 『마릴린 목련』에서/ 2024. 6. 13. <문학의전당> 펴냄

* 정두섭/ 경기 인천 출생, 2019년 <신라문학상_대상> 수상 & 2022년 ⟪경남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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