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눈물겹기도 하지
선유도에서
김밝은
밀어내도 밀어내도 마음만은
무작정 아득해져서
홀로 선 바위도 섬 하나가 되고
떨어진 꽃 한 송이도
한 그루 나무의 마음이 되지
비를 붙들고 걷는 사람을 꼭 껴안은 바다는
열어젖힌 슬픔을 알아챘는지
흠뻑 젖은 그림자로 누워 있네
아무리 생각해도
섬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참, 눈물겹기도 하지
-전문-
해설> 한 문장: 시상의 전개를 살펴보면 시인은 "밀어내도 밀어내도 마음만은/ 무작정 아득해져서"라고 말하는데, 마음이 아득해지는 것은 그것이 소멸하거나 무화되지 않고 멀어지면서도 쌓여서 깊어지기 때문이다.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는 세계이기에 "홀로 선 바위와 섬 하나"가 부모와 자식과 같은 유정한 관계를 형성하고, "떨어진 꽃 한 송이"와 "한 그루 나무" 또한 그러한 관계로 해석된다. "비를 붙들고 걷는 사람"과 그를 "꼭 껴안은 바다"의 관계 또한 이심전심의 관계로 묶여 있기에 "열어젖힌 슬픔을 알아챘는지/ 흠뻑 젖는 그림자로 누워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처럼 섬에서 보면 모든 세계(umwelt)가 마음과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로 보이는데, 섬이 이러한 인식을 가능케 하는 것은 그것이 고립무원孤立無援, 혹은 혈혈단신孑孑單身의 처지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섬은 바다에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기에 역설적으로 외부와 소통을 갈망하는 유정한 대상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그래서 섬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가 아득한 마음의 네트워크가 되며, 섬과 사람 또한 고독한 처지에 대한 동병상련의 공감과 연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시인이 "섬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참, 눈물겹기도 하지"라고 탄식하는 대목은 바로 섬의 이러한 속성에 대한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우리는 시인이 그동안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로 인해 고통스러워했던 장면을 상기해 보면, 시인의 안목이 좀 더 넓어지고 깊어진 국면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 그리고 사물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 마음과 마음이 오고 가는 유정한 관계라는 것, 그리고 세계가 마음이 오고 가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면, 자신의 애절한 이별과 부재의 고통이라는 것이 보편적인 삶의 본질 속으로 녹아들어 가 버리게 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시인은 더 이상 근원적인 부재의 고통을 특권화할 수 없으며, 그것을 삶의 한 조건으로 수용하게 된다. (p. 시 74/ 론 129-131) <황치복/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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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새까만 울음을 문자르면 밝은이가 될까』에서/ 2024. 6. 10. <미네르바> 펴냄
* 김밝은/ 2013년『미네르바』로 등단, 시집『술의 미학』『자작나무숲에는 우리가 모르는 문이 있다』, <미루> 동인, <빈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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