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섭선생가훈李昌燮先生家訓(전문)
이창섭(1926_2000, 74세)
이제 나의 나이도 고희를 넘어
얼마 남지 아니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다음과 같은 몇 가지
말을 자손들에게 남기고 싶다.
1) 청렴하게 살되 인색하지 말아라!
우리 집안은 근세 약 백년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넉넉한 재산을 가진 집안이었다. 그러나 대대로 학문을 업으로 삼은 집안인 까닭에 사치를 엄중히 경계하였다. 내가 듣기로는 집안에 수십 명의 노비가 있었던 시절에도 닷새에 한 번은 콩나물죽을 끓여 먹었다고 듣고 있다. 아무리 재산이 넉넉하다 하더라도 사람은 청렴결백하고 음탕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구두쇠가 되어 인색해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을 구휼하고 이웃의 불행을 도와주는 일에 결코 인색해서는 안 되며 조상의 이름을 빛내고 자식을 가르치는 데는 인색해서는 안 된다. 친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면 술자리 한 번쯤은 베풀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p. 369-370)
2) 높은 자리에 있어도 교만하지 말고 낮은 자리에 있어도 아첨하지 말아라!
사람은 자리가 높아지면 우쭐한 마음이 생겨 교만해지기 쉽다. 예전에 미국에 유학하고 돌아온 사람이 우리말을 더듬거리며 "우리 사람은 한국 말을 잘 모릅니다."라고 한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또 나의 동창생 가운데도 내가 조그마한 볼 일이 생겨 그를 찾아갔더니 그는 눈을 비비면서 "누구더라?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라고 하며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듯하는 태도를 취하였다. 그 후 장관자리를 그만둔 뒤 "나를 몰라보겠는가?" 라고 하였더니 그는 얼굴이 홍당무가 된 일이 있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잘 될 때도 있고 불우할 때도 있다. 그러나 항상 평상시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 지니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한 일이다. 중국의 유명한 선승禪僧에 '南陽 慧忠國師'란 스님이 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무엇이 도道입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는 "平常心이 도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사람이 평상심을 지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p. 370)
3) 먼 앞날을 내다보며 오늘의 생활에 충실하라!
사람은 희망을 상실하면 삶의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 항상 먼 미래를 내다보고 거기에 어떤 꿈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허황한 미래의 꿈에만 부풀려서 오늘 할 일을 게을리한다면 그 꿈은 산산히 부서지고 말 것이다.
나는 예전 공부에 열중할 때 책상 앞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써붙여 놓았었다.
"往者己去 來者未到 吾在於斯己矣/ 왕자기거 래자미도 오재어사기의"
지나간 것은 이미 떠났고 미래는 아직 여기에 오지 아니하였다. 나는 지금 여기 있을 따름이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한다. 시간은 강물처럼 쉬지 않고 흐른다. 오늘 홍안의 미소년도 얼마 후에는 파리한 백발의 노인이 된다. 오늘 하지 않아도 내일이 있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당장 눈앞에 닥친 일을 부지런히 열심히 수행하는 것이 슬기롭게 인생을 살아가는 길이다. (p. 370-371)
4) 길흉화복은 꼬인 새끼줄과 같은 것이니 기뻐할 필요도 슬퍼한 필요도 없다.
山은 한 번 높아지면 한 번 낮아지고 파도는 치솟았다가 다시 가라앉는다. 인생백년의 일도 이와 같이 기쁨과 슬픔과 복과 화가 번갈아 가며 반복하기 마련이다. 오늘 행복하다 하여 기뻐할 필요도 없고 오늘 불행하다 하여 슬퍼 필요도 없다. 묵묵히 자기가 할 일에 충실하고 본래의 지조를 지키며 슬기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p. 371)
5) 자손교육은 엄격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겐 관대하게 처세하라!
요즈음 아들 · 딸 가리지 않고 둘만 낳기가 일반화되었다. 예전에 '多男子'가 五福의 하나로 꼽히던 시대와는 격세지감이 있다. 따라서 외동아들 외동딸에 대한 지나친 탐애가 아이들을 교만하고 나태하게 만들어 그 장래를 망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녀수가 적을수록 예절과 행동교육을 엄격하게 가르쳐 유구한 영남선비의 가풍을 지켜나가야 한다. 가풍을 혼탁하게 하는 것은 조상의 뜻과 업적을 저버리는 일이다. 교육을 엄하게 한다는 것은 반드시 꾸짖고 매질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자기행동을 단정하게 하고 몸가짐을 엄숙하게 하면 아이들은 자연히 교화된다. 특히 남녀의 풍기가 문란해지고 사회도덕이 허물어지고 있는 지금, 아이들은 이기주의에 흐르고 자기만을 아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귀게 하고 사회의 공동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값비싼 사치한 옷을 입히지 말고 항상 검약하는 풍조를 길러주어 양보할 줄 아는 인간성을 조성해야 한다. 그러나 처세하는데 너무 청고淸高하면 사람이 외로워지고 각박해지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에게 다소의 결점과 과실이 있더라도 관대하게 포용하는 아량과 여유가 있어야만 사회에서 고립되지 아니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갈 길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말에 부화되동하는 것은 큰 실수를 초래하기가 일쑤이니 자기의 신조만은 굳건히 지켜야 한다. (p. 371-372)
6. 분수를 알고 분수에 맞게 살아라!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다. 하나를 얻으면 둘을 얻고 싶은 것이 끝없는 인간의 욕망이다. 학문을 하는 경우에는 이 끝없는 욕망은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기타의 사회생활에서는 자기의 분수를 알아야 한다. 999석을 가진 사람이 가난한 사람의 한 섬의 쌀을 빼앗아 천석군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가난해도 가난에 안주할 수 있고 부자가 되더라도 교만하지 아니하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항상 자기의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항상 자기의 위치에 불만을 품고 있으면 하루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다. 오늘 이만큼이라도 살 수 있게 한 하늘과 조상의 음덕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시국이 어지러운 대로 거기에 적응해서 자기 위치를 구축하고 나라가 태평할 때는 태평세월 대로 거기에 적응해서 자기 위치를 공고히 다지고 거기에 안주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p. 372)
7) 조상을 섬기고 친척과 화목하라!
'나'라는 존재는 조상으로부터 이어받아온 몸이다. 조상이 없었다면 '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잘못된 일이 조상을 욕되게 한다는 생각이 있으면 도덕과 인륜을 배반하는 행위는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조상의 묘를 잘 보전하고 조상의 세자를 잊이 않고 모시는 가풍을 절대로 버려서는 안 된다. 요즘 개신교를 믿는 사람들은 조상을 마귀라고 하며 그 제사를 모시지 아니하고 있는데 이것은 크게 잘못된 착각이다. 내가 알기로는 동양의 모든 나라의 개신교 신도 가운데 조상을 마귀라고 그 제사를 모시지 아니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의 개신교밖에 없다고 한다. 몇 해 전에 강姜 모라는 목사가 필리핀에서 열린 개신교의 모임에 다녀와서 다른 나라의 개신교도들이 제사를 모시고 조상의 묘에 참배하는 것을 비난하면서 진정한 개신교도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자랑한 일이 있다. 이것은 자기 얼굴에 똥칠한 것이지 조금도 잘한 일이 못된다. 나의 자손은 훗날 혹 개신교를 믿는 경우가 있더라도 절대로 조상의 묘와 제사는 개을리 해서는 안된다.
한편 친척은 같은 조상의 자손이니 나의 형제와 같고 나와 핏줄을 같이하는 사람들이다. 친척들과 사이좋게 서로 도우며 화목하게 지내는 것은 곧 자기 몸을 가꾸는 일과 같은 것이다. 흔히 사소한 일로 친척과 반목하고 심한 경우에는 조면을 하고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까지 있는 것을 보는데 이것은 자기 가문에 먹칠을 하는 행위다. (p. 372-373)
8) 일찍 인생의 지표를 세워놓고 외길로 한 길을 매진하라!
이것은 대단히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인간이 이 세상에 왔다가 갈 때는 무엇인가 사회에 유익한 유산을 남겨놓고 가는 것이 인생의 보람이다.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공자도 "君子疾歿世而名不稱(군자질몰세이명불칭)"이라 하였다. 군자는 죽을 때까지 이름이 일컬어지지 아니하는 것을 미워한다는 말이다.
이름이 세상에 일컬어지려면 꾸준히 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 아침에는 동쪽 길을 달리다가 저녁에는 서쪽 길을 달려 갈팡질팡 갈 곳을 모르게 되어서는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가 어렵다. 외길을 꾸준히 걸어가도 목표에 절반도 못 가서 늙음과 죽음이 찾아오는 것이 보통이다.
가을 매미가 마른 나뭇가지를 안고 울다가 울다가 울음이 다하도록 고개를 돌리지 아니하는 것과도 같이 (※ 寒蟬抱枯木 泣盡不廻頭/ 한선포고목 읍진불회두) 오직 외길을 향해 오늘도 내일도 그 길만을 매진한다면 끝내 어떤 성취가 있게 마련이다. 옛말에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한다"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이든 한 일을 오래 꾸준히 하다보면 나름대로 어떤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흔히 세상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바보라 한다. 바보라 하더라도 그 바보는 이침 저녁으로 표변하는 약삭빠른 사람보다 백 배 천 배 값진 바보다. (p. 373-374)
9) 우러러볼 줄도 알고 내려다볼 줄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계는 넓고 인생은 짧다. 이 넓은 세계에는 나보다 훌륭한 사람도 수없이 많고 나보다 못한 사람도 수없이 많다.
어떤 한 가지 일이라도 나보다 훌륭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우러러볼 줄 알아야 한다. 공연히 질투하고 훼방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한편 경제적인 살림살이는 항상 아래를 내려다보고 살아야 한다. 잘살게 되면 될수록 더 잘사는 사람을 쳐다보면 끝이 없다. 나보다 못 사는 사람을 생각하고 오늘에 만족할 수 있는 마음의 안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너희들의 어머니는 예전에 호미를 들고 땅콩밭에서 품삯을 받고 밭을 매어 그 돈으로 쌀을 사고 연탄을 사고 너희들의 버스값을 이어가며 너희들을 가르쳤다. 그래도 평생 불평 한마디 한 일이 없다.
거기에 비하면 오늘날의 생활은 얼마나 부유하고 행복한 생활이냐?
만족할 줄 알고 그칠 줄 아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마음이 편하고 정신이 맑아진다. 이는 동서고금을 통한 변함없는 진리요 철학이다. (p. 374)
10) 인생을 음미할 수 있고 즐겁게 살아라!
성급하고 초조한 것은 실패를 자초하는 근본이다. 느긋한 마음으로 세상을 내다보고 인생을 음미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만 인생이 즐겁다.
따지고 보면 인생이란 보는 시각에 따라 즐겁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것이 인생이다. 가족이 탈 없고 굶지 아니하고 오손도손 이만큼이라도 살아갈 수 있으니 얼마나 즐거우냐? 죽을 때까지 즐거운 마음 검사하는 마음으로 살아 간다면 인생은 낙원이다. 마음 속의 욕망을 끄지 못하고 항상 초조하고 근심하고 살아가면 인생은 지옥이다. 지옥은 땅 밑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속에 있다. 마음이 속박에서 해탈하지 못하면 그것이 지곳이다. 늘 여유있는 마음으로 낙천적인 자세로 인생을 살아가라!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야단법석을 한다고 새서 안 될 일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내가 나의 자손에게 부탁하는 마지막 인산의 자세다. (p. 375)
이상 열 가지의 가훈을 나는 나의 자손들에게 남긴다. 이 가훈을 지키고 아니하는 것은 내가 눈으로 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나의 자손이라면 완벽하게 가훈을 지키지는 못할지라도 지키는 흉내는 내리라는 한 가닥 기대를 걸어보는 것이 나의 지나친 욕심일까? ▩ (p. 375)
* 블로그 註: 위의 가훈이 담긴 책 『바보의 잠꼬대』를 쓰신 분은 우리 시단을 빛내는 '이경림 시인'의 선대인이십니다. 시인의 자택을 방문했을 때(2005. 12. 27.) 얻은 책을 어찌어찌 읽지 못하고, 이제야 완독하고 감동하며, 더할 수 없는 송구함과 게으름을 자책하면서···, 늦어도 너무 늦은 20년 만의 회답 (2024. 6. 20-17:17. No, 24-77)을 드렸습니다. 유학과 불교, 도교 등 동양 학문이 망라된 참으로 귀중한 책입니다. 며칠이고 며칠이고 품을 들여 노트하고 여기 수록하는 것으로 만 분의 일이나마 염치없음을 덜어보고자··· 옷깃 고쳐 고쳐 여미며, (삼가 향촉을 밝힙니다. 부디 영원한 평안을 누리소서!)
-------------------
* 이창섭 著 『바보의 잠꼬대』/ 1999. 3. 22. <다인아트> 펴냄
* 이창섭李昌燮/ 1926년 경북 예천 출생, 동국대 역경원 역경위원, 불교 천태종 역경원장, 퇴계학회 편간위원, 한중문화교육협회 고문// 해인사_고경선림총서 37권 번역, 천태종_삼대부, 오소부 등 80권 번역, 동대 대장경중 율경 고승전 등 번역, 유교_도동편, 지행록, 반간집, 강제집 등 다수 번역.
'여러 파트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담 순호의 마음 이해와 정화 인식(부분들, 다섯)/ 고영섭 (0) | 2024.08.21 |
---|---|
청담 순호의 마음 이해와 정화 인식(부분)/ 고영섭 (0) | 2024.08.19 |
이창섭 著 『바보의 잠꼬대』/ 주자가훈(朱子家訓)전문 : 이창섭 譯 (0) | 2024.06.21 |
슬픔의 깊이와 애도의 시간(부분)/ 전해수 (0) | 2024.03.09 |
격세유전의 문화적 밈 혹은 '가을 문명'의 한 소식(부분)/ 정효구 (0) | 2024.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