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아버지의 임종/ 양평용

검지 정숙자 2024. 6. 20. 01:16

 

    아버지의 임종

 

     양평용

 

 

  날이 어두워집니다.

  희미하던 불빛마저 꺼져 가고

  초침 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아버지, 잠시 후 숨쉬기 곤란해지면 얼른 숨을 멈추고

  먼저 가신 어머니 아버지를 불러야 해."

  차가워진 손이 꼼지락꼼지락 내 손을 잡는다.

  "아버지, 부탁이 있습니다."

  "머지않은 날, 지금 아버지처럼 숨쉬기 곤란해져 숨이 멈출 때 나도 아버지를 부를 겁니다. 그때 늦지 말고 꼭 마중 나와야 해."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때야 눈가에 미소가 돌고 꽉 잡은 손을 스르르 놓는다.

  '신이 어디 있느냐?' 하던 아버지도

  때가 되니 영접靈接하고 영면永眠한다.

  '초로인생草露人生이니 하루를 백 년처럼 살아라' 하며

  한시도 헛되이 보내지 말라고 하였건만

  어느새 90으로 시간은 멈췄고

  다른 사람보다 10년은 더 젊다는 소리를 들었건만

  늙지 않을 수 없었네.

  일터에서 집으로 방 안으로 침대로 들것으로

  세월 따라 운신運身의 폭이 작아지더니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네.

  가진 것 지닌 것 다 소용 없어짐에

  하나하나 다 정리하여 반납하고

  사지육신 성한 곳 없어짐에

  할 일도 할 말도 다 떠나갔네.

  어느 날이 오면 누구나 한 번은 맞이해야 할 최후의 그 순간.

  찬란했던 태양이 서산을 넘어 황혼을 몰고 옴에

  아버지와 나누었던 마지막 인사가 오늘따라 그리워지네.

      -전문(p. 82-83)

   -------------------------------

  * 『월간문학』 2024-5월(663)호 <이달의 시> 에서

  * 양평용/ 1957년 전남 순천 출생, 2010년 계간『백두산문학』으로 등단. 수필집『얼마나 사랑해야 다했다 할까』(2021)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겨울의 매미 울음/ 윤고방  (0) 2024.06.22
꿈속에서 죽었다/ 이성필  (0) 2024.06.21
거미줄 연구가/ 한명희  (0) 2024.06.18
투명 비닐우산/ 최진자  (0) 2024.06.18
기면(嗜眠)/ 이재훈  (0) 2024.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