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 비닐우산
최진자
장마가 시작되려 비를 뿌렸다
시야가 보이는 맑은 비닐우산을 폈다
펼쳐진 우산은 민무늬가 아니라
박제된 벚꽃 우산으로 변해 있었다
지난봄 비보라 칠 때
닭 털 뽑히듯 참혹하게 떨어진 꽃잎
고운 몸 유리 같은 수의에
몸을 누인 꽃잎이 문양이 되었다
벚꽃 우산을 쓰고
단풍나무 밑에서 올려다보았고
백합나무 옆으로 가 비춰보았다
다시 벚나무 밑으로 가니
비로소 꽃과 잎이 서로 알아보는 순간
벚나무 잎에 맺혔던 빗방울이
경쾌하게 물풍금 소리를 내며
비닐에 붙어 있던 꽃잎을 끌어안았고
물방울이 진주알처럼 자리잡았다
-전문(p. 144)
--------------------------
* 『시현실』 2023-겨울(94)호 <신작시> 에서
* 최진자/ 경기 김포 출생, 2017년『미네르바』로 등단 &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입선, 시집『하얀 불꽃』『신포동에 가면』『집으로 오는 그림자』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의 임종/ 양평용 (2) | 2024.06.20 |
---|---|
거미줄 연구가/ 한명희 (0) | 2024.06.18 |
기면(嗜眠)/ 이재훈 (0) | 2024.06.17 |
포렌식 금지령/ 윤정구 (0) | 2024.06.17 |
가을 깊은 집/ 윤정구 (0) | 2024.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