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서평 2_ 2023, 제9회 한국서정시문학상 수상 시집_송연숙 『봄의 건축가』> 에서
봄의 건축가
송연숙
소쩍새가 망치를 두드려
후동리 밤하늘에 구멍을 내고 있어요
소쩍소쩍 두드린 자리마다
노랗게 별이 쏟아지는 걸 보니
아마 그리움을 건축하는 중인가 봐요
노랗게 황달을 앓으며
어머닌 별처럼 익어가셨어요
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 몰라요
아버지가 잘못 밟아 터져버린 먹구름 솔기
등으로 그 빗줄기를 묵묵히 막아내시던 어머니
아가, 세상사를 조심하거라
아 어머니, 당신의 구부린 등 안쪽은
언제나 뜨뜻한 방이었고, 옷이었고, 밥상이었어요
조심조심 구름을 살피며 발걸음 옮기다 보니
어느새 저도 희끗한 정년의 머리카락이 보여요
잘 살았다는 안도의 숨을 돌릴 겨를도 없이
흰 구름 되어 떠나신 어머니
자식을 위해 구부렸던 등을
이제야 하얗게 풀어놓으시네요
소쩍새의 망치질 소리를 따라 세다가
솟아니는 별의 이마를 깨끗하게 닦아주다가
내 머리끝으로도 구름 한 자락
하얗게 내려앉는 들판이 보여요
-전문-
▶상실의 시, 그리움의 언어(발췌)_고봉준/ 문학평론가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두 개의 이질적인 시간에 관한 이야기다. 이 소설에는 초상화 속의 시간과 초상화 바깥의 시간이 등장한다. 도리언 그레이는 화가가 그린 초상화를 보면서 초상화가 자기 대신 늙어주기를 희망한다. 도리언 그레이의 이 기도가 이루어짐으로써 초상화 속의 시간과 초상화 바깥의 시간이 분열되는 것, 즉 주인공이 영원한 젊음을 얻는다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송연숙의 시에서 '엄마'의 죽음 또한 시인의 시간 의식에 이러한 분열을 초래한다. 시인이 기억하는 '엄마'의 시간은 '나'에게는 유년의 시간이다. 따라서 엄마를 회상하거나 그리워할 때마다 "희끗한 정년의 머리카락이"(「봄의 건축가」) 보이는 나이지만 그녀의 실존적 시간은 여전히 '엄마'의 시간, 즉 유년의 어디쯤에 멈춰 있다. 이러한 실존적 시간의 고착 현상은 시인이 '엄마'를 회상할 때마다 '아이'의 정동(affect)에 휩싸이는 장면에서 확인된다.
&
시인에게 소쩍새의 울음소리는 '후동리 밤하늘"로 표상되는 현실에 구멍을 내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다가온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이 구멍을 통해 쏟아지는 노란색 '별'은 두 개의 이질적인 시간을 연결해 주는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두 개의 시간 사이에 존재하는 '균열'이 어느 한 시간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두 개의 시간을 동시에 살아갈 뿐 전적으로 어느 하나의 시간에 속할 수가 없다. '그리움'은 바로 이 시간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감정이다. (p. 시 173-174/ 론 174 &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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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3-11월(407)호 <현대시 서평 2/ 제9회 한국서정시문학상 수상 시집 > 에서
* 송연숙/ 2016년 『시와표현』 신인상 수상 & 2019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측백나무 울타리』『사람들은 해변에 와서 발자국을 남기고 간다』『봄의 건축가』
* 고봉준/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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