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송현지_쌓이(지 않)는 반복들(발췌)/ 공원의 좋은 풍경 : 정재율

검지 정숙자 2024. 6. 13. 01:17

 

    공원의 좋은 풍경

 

     정재율

 

 

  새가 날아간다

 

  사람들은 종종 연못에 동전을 넣고 기도를 드린다

  아주 짧게

 

  중얼거리는 사람들 옆으로

  장난감을 잃어버린 아이가 있고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는 어른도 있다

 

  이상하다 분명 이곳에 있었는데

 

  그런 말을 하며 바닥에 엎드려 있는 사람

  그 옆으로 자전거 몇 대가 지나가고

 

  안전모를 착용했을 때 사망할 확률은 3배나 감소된다고 한다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 새는 연간 팔백 마리라고

  그것을 글래스 킬이라고 부른다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되면 잠시 새롭게 태어나는 것 같다

 

  가만히

  손바닥 위로 올라온 빛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쥐었다가

  다시 펴보았다가

 

  반복하는 동안

 

  이곳에선 함부로 모이를 주면 안 된다고

  누군가가 공원의 좋은 풍경을 다 망치고 있다 외치고

 

  나는 연못에 있는 오래된 동상처럼

  의자에 앉아 새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무언가 사라지더라도

  여전히 등뒤로 동전을 건져 내는 사람들이 있다

 

  공원에 있는 것들은

  어쩌면 너무 투명해서 보이지 않는 유리창을 매일 투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날아간다

 

  새가 있던 자리에

  나무 한 그루가 조용히 흔들리고 있다

     -전문, 『문학사상』 2023-9월호

 

  쌓이(지 않)는 반복들(발췌)_송현지/ 문학평론가

  「공원의 좋은 풍경」에서 (···) 새가 날아다니고, 사람들이 기도를 하며,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 자유롭게 다니는 이 공원의 풍경은 제목대로 좋아 보이지만 새들에게 "함부로, 모이를 주면 안 된다"며 "공원의 좋은 풍경을 다 망치고 있다"고 외치는 이로 인해 "좋은 풍경"이란 말의 뉘앙스는 완전히 달라져 버린다. 혐오를 축적해 온 자의 저러한 말은 공원의 풍경을 새로이 살펴보게 하는데 무언가를 갈구하며 기도하거나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는 사람들, 체면이나 양심 따위 사라지더라도 당장의 이익을 구하려는 이들("무언가 사라지더라도/ 여전히 등 뒤로 동전을 건져 내는 사람들이 있다")이 있는 이곳은 기실 평화로움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우리는 뒤늦게 깨닫게 된다. 이러한 점은 정재율이 이 시에서 힘주어 말하려는 것이 '좋은 풍경'이라는 말 뒤에 숨겨진 정치성임을 드러낸다. 새가 내쫒기고, 무언가를 간구하는 사람들이 머무르는 풍경이 새들이 가만히 앉아 있는 정경보다 좋다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지 않고 혐오와 배제의 시간을 견고히 포개어 둔 이에게는 "새로운 단어"가 들어갈 틈이 없다. 공원에 머물고 있는 우리들도 사실은 누군가가 세워 둔 투명한 유리창을 한시적으로 통과한 존재들일 뿐 언젠가 "글래스 킬" 당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언제든지 베슬의 높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음을 정재율의 시는 알려준다. (p. 시 221-223/ 론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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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3-11월(407)호 <현대시작품상 추천작을 읽고> 에서

  * 정재율/ 2009년『현대문학』신인추천으로 작품 활동 시작시집『몸과 마음을 산뜻하게』등

  * 송현지/ 202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