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송기한_소모된 자리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희망(부분)/ 이명 : 박상봉

검지 정숙자 2024. 5. 28. 02:16

 

    이명

 

    박상봉

 

 

  종종 소리가 안 듣기오

  물에 잠긴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아오

 

  어린 시절 강물에 빠져 죽을 뻔한 경험이 있소

  코와 귀에 물이 찬 상태에서 제때 치료받지 못해 청력을 잃었소

  오랜 세월 말귀 알아듣지 못했소

 

  가끔은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오

  어느 날 갑자기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소

 

  스무 해 넘게 써온 보청기 서랍 속에 넣어두고

  지금껏 다시 꺼내 쓸 일 없었다오

 

  전 생애는 어두운 그늘 짙게 드리워 있었소

  하지만 그늘 속은 초록이오

 

  차양을 들추고 초록으로 들어와 보오

  너르게 펼쳐진 풀밭 넌출거리는 초록 너머 

 

  아이들 떠드는 소리 가깝게 들리잖소

      -전문-

 

  ▶소모된 자리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희망/박상봉의 신작시들(부분)_송기한/ 문학평론가    

  박상봉 시인이 중심에서 밀려난 것들, 쓸모없는 것들에 대한 응시와, 거기에 적극적인 의미 부여를 통해서 서정의 영역을 일구어낸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시들은 조화의 결핍 속에서도 의미화된다고 했는데, 바로 인용 시가 그러하다. 대상으로만 향하던 시인의 시선이 이제 시인 자신의 것으로 옮아오고 있는 것이다.

     (···略···)

  귀가 먹은 상태가 가끔은, 아니 한 번쯤은 새로운 경험으로 환기되곤 한다. 그것이 특이한 서정적 충격을 만들어낸다. 가령, "기적이 일어나서" "어느 날 갑자기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하는" 낯선, 그리고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정적 자아는 거기서 삶의 적극적 태도, 능동의 자세로 존재의 변이를 시도하게 된다. 자아를 한평생 지배했던 "어두운 그늘"이라는 터널 속에서 '초록'으로 표상되는 삶의 긍정성을 읽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초록'이라는 담론이 시인의 정신세계를, 혹은 작품 세계를 신성하게 만든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둠의 대항담론은 일단 밝음에서 시작된다. 흔히 연상되는 것으로 빛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서정적 자아의 선택은 '초록'이라는 일차적 이미지, 곧 색채적 이미지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밝음의 상관물일 것이다. 선명한 조형선도 문제적이지만, 거기서 삶의 건강성을 독해하는 것 또한 문제적이다. 주변에서 혹은 부조화에서 건강한, 긍정적인 정서를 환기하려는 시인의 의도가 이채롭다. (p. 시 145/ 론 158 (略) 158-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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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에』 2024-여름(74)호 <시에 시인, 박상봉 시 깊이 들여다보기/ 신작시/ 작품론> 中  

 * 박상봉/ 경북 청도 출생, 1981년『국시』로 등단, 시집『카페 물땡땡』『불탄 나무의 속삭임』『물속에 두고 온 귀』

 * 송기한/ 충남 논산 출생, 1991년『시와시학』으로 등단, 저서『현대시의 정신과 미학』『육당 최남선 문학 연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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