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는 말씀
김금용
나비가, 흰나비가 어깨를 친다
고개 떨군 슬픔의 무게만큼 무겁게
코끝을 스치며 날개를 흔든다
걱정하지 마
봄햇살이 따뜻하게 감싸니깐
난 흰나비가 되었거든
구름 밖으로 날아갈 거니깐
굵은 못 꽝꽝 박은 목관 틈새를 뚫고
가볍게 어둠을 벗어날 테니깐
괜찮아
농담하듯 짖궂게 내 어깨를 치는 나비,
대꾸도 없이 도망치기만 했음에도
등 뒤로 숨기만 했음에도
당돌하게 대들던 내 화살촉 말들이
빗줄기 요란한 퍼포먼스였다고 덕담을 해주네
젊은 치기도 주관 뚜렷해서 반가웠다고
내 머리를 쓰다듬네
미안해하지 마,
날 딛고 일어서는 널 지켜주고 싶네
삶에 끌려 욕심부린 날들은 무명지에 둘둘 말아서
화장터에서 함께 태워버리게나
재가 된 내 뼛가루는 가볍게 강물에 날려버리게나
항아리에 넣어 다시 땅에 묻지 말게나
미련 없이 털고 날아갈 수 있도록
날개에 힘이 붙도록
내 이름조자 비워주게나
날 부디 잊게나, 잊어주게나
-전문(6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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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하우스』 2024-상반기(창간)호 <시 1부> 에서
* 김금용/ 1997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물의 시간이 온다』『각을 끌어안다』『핏줄은 따스하다』『넘치는 그늘』『광화문 자콥』, 중국어 번역시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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