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남기는 말씀/ 김금용

검지 정숙자 2024. 5. 30. 01:31

 

    남기는 말씀

 

     김금용

 

 

  나비가, 흰나비가 어깨를 친다

  고개 떨군 슬픔의 무게만큼 무겁게

  코끝을 스치며 날개를 흔든다

 

  걱정하지 마

  봄햇살이 따뜻하게 감싸니깐

  난 흰나비가 되었거든

  구름 밖으로 날아갈 거니깐

  굵은 못 꽝꽝 박은 목관 틈새를 뚫고

  가볍게 어둠을 벗어날 테니깐

 

  괜찮아

  농담하듯 짖궂게 내 어깨를 치는 나비, 

  대꾸도 없이 도망치기만 했음에도

  등 뒤로 숨기만 했음에도

  당돌하게 대들던 내 화살촉 말들이

  빗줄기 요란한 퍼포먼스였다고 덕담을 해주네

  젊은 치기도 주관 뚜렷해서 반가웠다고

  내 머리를 쓰다듬네

 

  미안해하지 마,

  날 딛고 일어서는 널 지켜주고 싶네

  삶에 끌려 욕심부린 날들은 무명지에 둘둘 말아서

  화장터에서 함께 태워버리게나

  재가 된 내 뼛가루는 가볍게 강물에 날려버리게나

  항아리에 넣어 다시 땅에 묻지 말게나

  미련 없이 털고 날아갈 수 있도록

  날개에 힘이 붙도록

  내 이름조자 비워주게나

  날 부디 잊게나, 잊어주게나

      -전문(64-65)

 

   ---------------------

 * 『시인하우스』 2024-상반기(창간)호 <시 1부> 에서

 * 김금용/ 1997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물의 시간이 온다』『각을 끌어안다』『핏줄은 따스하다』『넘치는 그늘』『광화문 자콥』, 중국어 번역시집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