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느릅나무/ 임승빈

검지 정숙자 2024. 5. 23. 00:39

 

    느릅나무

 

     임승빈

 

 

  겨울 호숫가, 느릅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래서 느릅나무는 겨울 호숫가 느릅나무가 되었다

  어느 날부터 청둥오리 몇 마리가 날아와 물살을 가르며 이리저리 헤엄쳐 다녔다 그래서 느릅나무는 어느 날부터 청둥오리 몇 마리가 날아와 물살을 가르며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는 겨울 호숫가 느릅니무가 되었다

  밤이면 한쪽으로 호수가 얼고 바람도 겨울답게 매서워지곤 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청둥오리 몇 마리가 날아와 물살을 가르며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는 겨울 호숫가 느릅나무는 매서운 겨울바람에 가끔 가지가 더 크게 흔들리곤 했다

  오늘은 초저녁부터 달이 올랐다 아직은 다 차지 않은 쪽달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청둥오리 몇 마리가 날아와 물살을 가르며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는, 밤이면 한쪽으로 얼음이 얼고 매서운 바람에 저 혼자 가지를 흔들어대던 겨울 호숫가 느릅나무는 몸 전체로 한 그루 달빛이었다

 

  쪽달처럼 생겨난 가슴이 밤늦도록

  물소리를 내고 있었다

      -전문(p. 28)

 

 ------------

* 『시에』 2024-여름(74)호 <시에 시> 에서

* 임승빈/ 북 보은 출생, 1983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분리된 꿈』『흐르는 말』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