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변신/ 박판식

검지 정숙자 2024. 5. 15. 02:28

 

    변신

 

    박판식

 

 

  내일 내 꿈은 핑크입니다

  꿈도 가끔은 색깔이 필요하다는 게 놀랍습니다

 

  핑크가 그렇게 다양한 줄 몰랐습니다

  고흐의 핑크, 뭉크의 핑크, 마네의 핑크, 샤넬의 핑크

  셜리의 핑크······

  면접관의 서류철 속에서 꿈은 비닐 포장이 되어 하나씩 번호를 부여받고

  보살은 불가해를 손에 넣습니다

 

  보살은 온몸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습니다

  183센티미터의 잘생긴 보살이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중생을 찾고 있습니다

 

  생각은 전화처럼 옵니다, 받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매일매일 매 시각 분초 단위로 알람이 울립니다

 

  훌륭한 생각에도 매너리즘은 있습니다

  꿈속에서라도 아무렇지 않게 일생을 낭비하는 인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염라대왕 앞에서도 자신이 고객이라고 착각하는 중생은 있기 마련입니다

  계산서를 내밀면서 핑크빛 알몸의 바지 주머니에서 카드를 찾다가

  귀빈은 평생 자신이 먹은 것을 다 토해 내고 있습니다.

     - 전문(p. 9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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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작』 2022-가을(81)호 <신작시> 에서

  * 박판식/ 2001년『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밤의 피치카도』『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나는 내 인생에 시원한 구멍을 내고 싶다』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