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50/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24. 5. 18. 02:21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50

 

     정숙자

 

 

  가을은 사유를 자유롭게 합니다. 지친 영혼을 충전시켜 줍니다. 길 떠나는 철새들에게 손수건 흔들어 보이는 억새  꽃 언덕. 더 총총 더 맑게 떠오른 별들을 보노라면 제 삶에 얹힌 돌도 얼룩을 잊어버립니다. 아아 그러나 가을은 멈출 수 없는 외로움을 몰아옵니다. 마음이 맑아진다는 것 자체ᄀᆞ <외로움>이ᄅᆞᆫ 병환의 시초입니다. (1990.10.13.)

 

           

 

  책이 우는 걸 보았습니다

  사람이 울어도 차마 못 볼 일인데,

  책이 울다니,

  책이,

 

  삼십여 년 한곳에 세워두었던 책을 이사 와서 다시 가나다순으로 장서했거든요. 앗 그런데 표지 날개에 끼워진 첫 장을 어느 책에서 펴보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날개 속에 여유분의 틈이 없어서 세로로 주름져 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안쓰러웠는지 당장 1.5mm 정도를 자를 대고 반듯하게 잘라내 주었습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하면서요.

 

  비닐 커버의 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엔 참을만하지만 오랜 세월 그렇게 갇혀 있기는 서러웠던 것이지요. 그 하루 쓰다듬고 어루만진 다음부터는 제가 샀거나, 어떤 분이 보내주셨거나 날개 속으로 들어갈 첫 페이지는 울지 않을 만큼, 숨 쉴 수 있을 만큼을 자를 대고 잘ᄅᆞ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다듬어낸 종이오라기가 벌써 댓 자밤이나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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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웹진 시산맥』 2024-봄(창간)호 <신작시> 에서

* 정숙자/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공검 & 굴원』『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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