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배를 하늘 높이 들지어다* 외 1편
강원특별자치도 출범에 즈음하여
심은섭
곡선으로 된 옷깃의 옷을 입고 살았던 예맥 사람들의 땅
산천마다 경계를 짓고, 이웃끼리 서로 간섭하지 않고 사는
300만 예맥의 얼굴들,
그들은 좀생이별자리로 풍년을 점치며 사슴처럼 살았으며
태백산맥을 가슴에 품고 천년을 살아온, 이 같은
예맥의 사람들을 귀히 여기시던 조물주께서
강원특별자치도 출범의 복을 내리셨으니, 이젠 이 옥토에
설악산 정상으로 오색케이블카가 오르내리고
탄소중립 녹색성장 중점자치도가 될 것을 선언할지어다
늘 추위에 떨던
군사접경지역의 경제가 둥지의 새알처럼 부화를 하고
산림이용진흥지구제도가 금빛날개로 창공을 날며
절대농지구역이라는 차꼬와 수갑에서 진즉 해방될지어니
순박한 품성과 왕겨 한 톨도 만금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300만 강원도민이여!
50년의 숙원이 푸른 깃발처럼 나부끼는 유월 열 하룻날,
축배를 들어라
푸른 함성이 가득 담긴 황금잔을 하늘 높이 들어라
소양강 처녀가 은빛물결로 춤추며 노래하고
치악산 구룡사 범종소리가 사냥에 지친 부엉새를 위로하고
강문앞바다의 어선이 만선의 깃발을 펄럭이며 돌아오리라
가죽이 찢어지도록 힘껏 쇠북을 쳐라
징을 울려라
천년의 미래로 첫 걸음을 성큼 내딛는 강원특별자치도여!
300만 강원도민의 홧불로 영원하라
-전문(p. 78-79)
* 강원특별자치도 출범기념 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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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 대얏물
세숫물에 나를 닮은 웬 사내가 보입니다
세숫물에 아버지가 있습니다
세숫물에 어머니가 있습니다
세숫물에 누나를 닮은 웬 여자가 보입니다
한자리에 모인 가족 모두가 웃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그 웃음소리는 산탄처럼 도시로 흩어지고
세숫물에 내 얼굴만 섬처럼 남아 있습니다
-전문(p.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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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천마총엔 달이 뜨지 않는다』에서/ 2023. 8. 8. <성원인쇄문화사> 펴냄
* 심은섭/ 2004년『심상』으로 시인 등단, 200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2008년『시와세계』로 문학평론 당선, 시집『K과장이 노량진으로 간 까닭』『Y셔츠 두 번째 단추를 끼울 때』『천마총엔 달이 뜨지 않는다』, 평론집『한국현대시의 표정과 불온성』『상상력과 로컬시학』, 공저『달빛빛물결』『강릉문학사』『강릉을 사랑한 어촌 심언광』, 편저『당신이 만약 내게 문을 열어 주신다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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