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천마총엔 달이 뜨지 않는다/ 심은섭

검지 정숙자 2024. 5. 22. 01:03

 

    천마총엔 달이 뜨지 않는다

 

     심은섭

 

 

  그곳에 가만히 내 몸을 뉘어본다 천정엔 물병자리 별빛이 한가롭다 벽화엔 살구나무가 산모처럼 몸을 푼다

 

  주인을 잃은 천마는 천상을 호령하며 자작나무 껍질 위로 말발굽을 내딛지만 돌무지 널 속 왕관은 깊은 잠에 취해있다

 

  굴삭기가 동굴의 옆구리를 찍어도 해머가 목관 속의 침묵을 으깨어도 성골인 까닭으로 그는 깨어날 수 없다

 

  시간을 살해해야 살아남는 역사는 결단코 뒤돌아보지 않는 표독한 습성을 지닌 한 마리의 맹수였다

     -전문-

 

 

  시론> 한 문장: 시는 어떤 주제를 노래하더라도 인간의 삶이 반영되어야 한다. 인간의 삶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은 체험의 재구성을 요구하는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게 된다. 시는 이미 체험한 인간의 경험을 재구성이라는 재생을 통해 사람들을 반성하게 하고, 성찰하게 만들고, 깨닫게 함으로써 자기구원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를 쓴다는 것의 본질은 자신을 위한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p. 117-118)

    (···)

  그러나 현대로 이어오면서 시인들은 이런 권력이나 실제적·현실적 효용보다는 근대 미학의 특성인 이른바 순수예술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현실적 효용성보다는 사 자체의 아름다움, 그러니까 현실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혹은 현실과 다른 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에 몰두한다. (p. 118)

    (···)

  산업혁명의 와중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직업이 있다. 바로 시인이다. 그것은 시인이 오랜 역사의 부침 속에서 소멸하지 않고 지금까지 존재하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시인은 한 편의 시로 반성하고, 한 편의 시로 성찰하고, 한 편의 시로 기도하고, 한 편의 시로 절망으로 부터 구원받고, 한 편의 시로 혼탁한 세상을 청명하게 만들고, 한 편의 시로 부조리한 세력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이런 역할은 신이 내려준 시인만이 가지는 특권이다. 그러므로 시(작품)를 쓴다는 것은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디자이너이며, 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언어의 머슴인 셈이다. (p. 시 15/ 론 117-118118 123-124) <저자/ 시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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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천마총엔 달이 뜨지 않는다에서/ 2023. 8. 8. <성원인쇄문화사> 펴냄 

  * 심은섭/ 2004년『심상』으로 시인 등단, 200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2008년『시와세계』로 문학평론 당선, 시집『K과장이 노량진으로 간 까닭』『Y셔츠 두 번째 단추를 끼울 때』『천마총엔 달이 뜨지 않는다』, 평론집『한국현대시의 표정과 불온성』『상상력과 로컬시학』, 공저『달빛빛물결』『강릉문학사』『강릉을 사랑한 어촌 심언광』, 편저『당신이 만약 내게 문을 열어 주신다면』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