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세 번째 출구에서 우리는/ 서이령

검지 정숙자 2024. 5. 26. 01:15

 

    세 번째 출구에서 우리는

 

     서이령

 

 

  어느 방향으로 몸을 돌리든

  우리는 바뀔 것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목적지를 정한 것도 아닌데

 

  세 번째 출구는

  왜 세 번째에만 있나

 

  나는 보이는데

  너는 보이지 않는다고

  처음 보는 사람처럼 기다린다

 

  같은 방향을 가면서도

  서로 꿈이 다르듯

 

  세 번째 출구에서 우리는

  모르는 사람처럼 만날 것이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우리는 으레 인연이라는 것을 동일성으로부터 기초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다시금 생각해 보자면, 살상 마주침이란 서로 다른 궤도 에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던 두 사물의 우연적인 조우에 가깝다. 서이령이 세 번째 출구에서 우리는이라는 시에서 밝히고 있는 희망의 한 가닥 또한 이와 같다. 오히려 상실의 현실 속에서, 서로 다르게 존재한다는 사실은 과거에는 이별의 이유로 작용했지만, 미래에는 역설적으로 재회를 위한 가능성으로 뒤바뀌게 된다. 이것이 그가 수행한 반복적 글쓰기를 통해서 얻어낸 한 줄기의 희망이라면, 그 글쓰기 속에서 수없이 반복된 고통이 무의미하지는 않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p. 시 25/ 론 113) <임지훈/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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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세 번째 출구에서 우리는』에서/ 2024. 5. 16. <문학의전당> 펴냄 

* 서이령/ 충북 제천 출생, 2009년 연간지강원작가회의로 등단, 시집『오래된 맑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