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 꼬리가 보이는 계곡
신명옥
달리는 소리에 계곡은 늘 깨어있고
앉기 편한 돌을 골라 발 담근 내가
소리 내며 달리는 투명한 물살을 들여다본다
불룩하거나 움푹 파이는 물의 굴곡은
정교한 사슬의 톱니들 같다
무수한 초침들로 분주한 도시의 하루
되돌릴 수 없고 붙잡을 수 없는 흐름 속에서
소스라치듯 욕망의 트랙을 달려간 바퀴들은
모두 어디에 가있을까
서늘한 그늘 좇아 자리를 바꾸는 내가
초침에서 분침으로 느슨해진다
나무처럼 하늘 향해 귀를 세우고
느리게 움직이는 구름을 바라보는 지금
비로소 시간 밖으로 나온 것 같다
떨어진 잎이 뜬구름 위를 천천히 맴돈다
달려간 이들이 닿은 피안이 저곳 같아서
이쪽과 저쪽의 거리를 가늠하는 동안
미늘에 물려 기울어지는 눈금 속으로
모월모일의 붉은 꼬리가 짧아지고 있다
-전문(p. 9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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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터 동인 제7집 『시 터』 2022. 11. 10. <현대시학사> 펴냄
* 신명옥/ 2006년『현대시』로 등단, 시집『해저 스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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