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라, 반가사유
마라톤을 하는 시각장애우
윤경재
밑줄 친 두 호흡이
열두 줄 가야금 산조에 맞춰 달리고 있다
먼 저곳 사유의 길을 향해
앉음과 섬, 그리고 그 중간의 반가에
모든 게 달렸다는 듯
차마 실눈 뜨고 바라보는 뭇 숨소리도
두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인다
여러 천 년 동안 이별하여 지냈던
손목의 맥동이 만나 기뻐 뛸 때
둘 사이를 엮은 노란 리본이
펄럭펄럭 춤을 춘다
반 발짝쯤 앞서가는 육신의 신호등
뒤를 밀어 올리는 마음의 눈을 따라야 한다
누가 누구를 이끌며 가는 마라톤인지
서로 의지하는 투명 끈이
오르락내리락 마음들을 단단히 묶어준다
이곳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는 존재하지 않는다
두 분 반가사유상의 깊은 공명
-전문(p. 1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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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터 동인 제7집 『시 터』 2022. 11. 10. <현대시학사> 펴냄
* 윤경재/ 2007년『만다라 문학』으로 & 2008년『문예사조』로 등단. 2018~2021. 10. ⟪중앙일보⟫ '나도 시인' 시와 해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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