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名
노혜봉
캄캄할수록 가득 차 하늘꽃이라 불러본다
아버지 얼굴 흐릿해 불화살 맞은 해바라기꽃이라 부른다
멍들어 가슴에 새긴 혈흔, 도장꽃이라 써 본다
나 죽으면 불러줄 이 없는 그 이름 실컷 불러본다
하루아침 훌쩍 지구의 회전문이 열려져, 그 옛날
우주로 출타하신 이후, 아무도 아버지 성함
써 드린 일 없는 노용석盧龍錫, 그 이름,
문갑 서랍을 열고 상자 속에 고이 모셔 둔
아버지 상아도장을 꺼내, 오랜만에 문질러 본다
싸늘한 돋을새김에 소름 살아 오르듯 촉촉한 체온
시집와서 생신날 제삿날 까맣게 잊고 못 챙겨 드린 일
밀린 참회록 내리 써 놓으면 꽃도장으로 지워 주실까
곤히 잠들어 있는 어머니 눅눅한 그늘 곁
가족관계증명서에 아버지 검지손톱 담뱃진 맡듯이
상아도장 향기를 꾹꾹 눌러 하염없이 품어본다.
이 밤, 큰 애기 울음꽃 한 그루 가지 틈새마다
살구빛 등을 달아 별바닥까지 밤을 밝힌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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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터 동인 제7집 『시 터』 2022. 11. 10. <현대시학사> 펴냄
* 노혜봉/ 서울 출생, 1990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산화가』『쇠귀, 저 깊은 골짝』『봄빛절벽』『좋을 호』『見者, 첫눈에 반해서』(나눔 도서 선정)등, 시선집『소리가 잠든 꽃물』『색채 예보, 창문엔 연보라색』, 동화 『알 수 없어요』(우수도서 선정)/ 성균문학상, 경기도 문학상 대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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