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혼자 먹는 점심/ 사공정숙

검지 정숙자 2024. 4. 21. 15:34

<에세이 한 편>

 

    혼자 먹는 점심

 

    사공정숙

 

 

  평일 낮 시간에 아들과 점심을 먹었다. 모처럼 휴가를 받아 회사를 쉬는 아들과 얼굴을 맞대고 식탁에 앉았으니 즐겁지 않을 리 없었다. 한가로이 식사를 즐기는 가운데 문득 아들이 물었다.

  "엄마, 평소에는 점심을 어떻게 드시죠? 혼자서 드셔야겠네."

  새삼스럽게 딱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걱정을 해주었다. 철이 들었을까. 아들은 혼자서 밥을 먹는 엄마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다가 누군가가 제 머리통을 통   하고 칠 때의 자극을 받은 양 아주 일상적인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올린 것이었다.

  나는 아들에게 호들갑을 떨었다. 혼자서 밥을 먹으려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지 모른다고 하였다. 아들은 그런 제 엄마가 가여운지 친구들이나 가까이 사는 이모라도 불러서 같이 식사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아들을 보면서 웃고 있었다. 왜냐하면 혼자 먹는 점심이 그다지 나쁘지 않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지금, 아직까지는 그렇다.

  결혼하기 전에 집에서 혼자 밥을 먹은 기억이 별로 없다. 특별히 몸이 아프거나 때를 놓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열두 명이나 되는 친정의 대식구들 틈에 끼여 늘 정신없이 밥을 먹어야 했다. 내 자리라고 비집고 앉아 밥 먹는 일은 노동이나 마찬가지였다. 밥을 차리는 일도 물론 수월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서는 일꾼들까지 낀 이십여 명 분의 식사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동생들을 챙기면서 맛있는 반찬은 배분을 잘 해야만 했고, 할아버지 진지는 숭늉까지 올려야 했다. 밥을 먹다가도 몇 번이나 들썩이며 일어나야 했는지 모른다. 후식까지 마련된 여유로운 식사는 내겐 먼 꿈일 뿐이었다. 더군다나 조용히 혼자 먹는 밥은 더 먼 꿈이었다. 단출한 핵가족의 식탁이 그나마 내겐 실현 가능한 미래로 여겨졌다.

   마침내 결혼을 하고 혼자 점심을 먹게 되었다. 꿈같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첫아이를 가지면서 행복했던 점심은 내게서 금방 사라져 버렸다. 심한 입덧에 시달리게 되어 뱃속의 아이와 함께 먹고 마셔야만 했던 것이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토마토로 점심을 때우고 신 자두를 찾아 시장을 헤매었다. 또 연년생으로 작은 아이가 태어났다. 그들이 어렸을 때의 우리 집 식탁은 늘 전쟁터와 같았다. 밥을 흘리고 국그릇을 엎고, 먹지 않으려고 떼를 쓰는 아이의 뒤를 따라다니며 밥을 먹여야 하고··· 한 녀석은 또 용변을 보느라 끙끙대고.

 

  아름다운 피아노곡의 선율이 거실 가득 깔리고 낮은 키의 센터 파스가 멋스러운 식탁에서 은수저를 들고 밥과 국을 우아하게 먹을 수는 없을까, 아니면 천천히 밥을 먹는 마음의 여유라도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게 과연 그런 날이 오기나 할까, 혼자 생각하며 기본적인 삶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자신이 가끔은 싫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은 마술처럼 내게 품위 있는 점심을 들 수 있는 기회를 너무 많이 내려 주셨다. 아이들이 크고 딴 살림을 하면서 남편이 회식이라도 하면 저녁식사도 혼자 할 때가 있으니 점심은 온전히 나만의 영역이 되었다.

  며칠 전, 친구를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친구는 초등학교 교사인 딸이 지금 병가 중이라며 걱정이 가득했다. 딸은 사랑하는 두 아들과 남편이 있지만 오롯이 혼자서 밥을 먹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딸네 집에 가보면 밥상을 차려 자기 방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온다고 했다. 자발적인 '혼밥'인 셈이었다. 학교 급식 시간에 반 아이들이 밥은 잘 먹는지, 서로 싸우지는 않는지, 혹시 무슨 사고는 나지 않을까 체크하면서 흡사 미어캣처럼 고개를 빼어 학생들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점심은 뒷전으로 하고 말이다. 그 힘듦과 다른 사건들이 겹쳐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까닭이었다.

  우리는 늘 이렇게 '함께'와 '따로'의 경계에서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사람에 따라, 처한 환경에 따라 그 경계선은 유동적이다. 나 역시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확인하기 위해 떠들썩한 회식과 모임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우아한 런치를 즐기기도 한다. 함께하는 에너지와 교유의 즐거움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혼자만의 점심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원하던 혼자만의 점심이지만 가끔은, 밥을 먹으면서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외로움을 사랑한다. 긴 시간 동안 이 한 조각의 고독과 한유閑裕를 얻으려 세월과 싸워온 것이기에 소중한 것이다. 시간이 공간처럼 여겨진다. 간신히 찾은 나의 공간에서 천천히 밥을 먹으면서 생각에 잠긴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나만의 세계에서 자신에게만 몰입한다. 아름다웠던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보기도 하고 미래의 어떤 일을 그려보기도 한다. 입 속으로 들어가는 밥과 국과 나물과 김치가 나의 내면으로 들어가기 위한 의례쯤으로 여겨진다. 맛있는 식사와는 거리가 먼, 아침에 먹다 남은 것들로 차려진 식탁이지만 이 순간 사랑하는 사람과의 식사 시간 못지않게 내겐 소중한 무엇으로 가득 차 있다.

  나에게 가는 길, 혼자 먹는 점심에는 '나'가 있다. (p. 6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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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시학』 2024-봄(48)호 <이 계절의 초대 수필>에서

   * 사송정숙/ 1998년『예술세계』로 수필 부문 등단, 시집 『푸른 장미』『신은 멀미를 해도 괜찮아』, 수필집『꿈을 잇는 조각보』, 산문집『노매실의 초가집』, 서울시『도보해설 스토리』메뉴얼 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