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사족/ 정수자

검지 정숙자 2024. 4. 18. 01:07

 

    사족

 

    정수자

 

 

  입술을 댈 듯 말 듯 서운히 보낸 어깨

 

  돌아서고 나서야 없는 너를 만질 때

 

  귓전에 연해 밟히는 중저음의 느린 여음

 

  끝동을 길게 두다 서운해진 노을처럼

 

  말 없는 말 그리며 사족사족 매만지네

 

  자판에 자그락대는 자모음을 깨물어보듯

     -전문(p. 24)

 

  해설> 한 문장: 3 · 4조 혹은 4 · 4조가 거의 그대로 지켜지는 이 작품은 바로 그 오래 익숙한 가락 때문에 읽는 순간 이미 절반은 읽는 자의 피부 속으로 바로 들어간다. '육화된 가락'이라고 하면 정확할 이 소리는 적어도 한국어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겐 매우 중요한 것이다. 포르투갈의 전통 음악인 파두에 '사우다드Saudade'라 불리는 포르투갈 고유의 정서가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시조의 가락엔 한국어 공동체의 오래된 공유 정서가 깔려 있다. 규칙적인 박자를 문자 기호에 부여할 때,  문자 기호는 물리적 비례성을 갖는다. 가락의 정형성이 시각의 정형성을 만든다. 각 행의 길이가 거의 유사한 시조는 불필요한 이파리들을 다 떼어버린, "균형 · 조화 · 격조 · 절제 · 간결"의 미적 형식을 보여준다. 근대 이후 세계의 파편화가 파편적 모더니즘 미학을 만들었다면, 시조는 그 모든 세상의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동질성의 패턴이 존재함을 다시 확인하는 미적 형식이다. 그러므로 시조는 미적 형식이자 동시에 세계를 대하는 (읽는) 하나의 태도이다. (p. 시 24/ 론 108-109) <오민석/ 문학평론가 · 단국대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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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인칭이 점점 두려워질 무렵』에서/ 2024. 3. 27. <문학의전당> 펴냄 

 * 정수자/ 경기 용인 출생, 1984년  <세종숭모제전국시조백일장>장원으로 등단, 시집『탐하다』『허공우물』『저녁의 뒷모습』『저물녘 길을 떠나다』『비의 후문』『그을린 입술』『파도의 일과』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