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한 송이 꽃 외 1편
한이나
누구를 닮은 것일까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
그 아득한 연결점의 누군가를 허공에서 꺼내본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한 번도 보이지 않은 사람 아버지, 거울 속 나를
뜯어보면서
그 누군가의 성향과 정서와 용모
그 무엇이 그에게서 내게 전해 왔는지
자식에서 자식 다시 자식까지
뿌리를 내려다보며 기질까지 낱낱이
유추해 본다
내 안의 피와 살과 뼈를 준 숫자와 기호들
살아 무성했을 말과 공허했을 몸짓들
전전긍긍 여기까지 무사히 온 것만도 덕분이라고
물결무늬 감정이 레테 강으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은총의 실마리를 찾아 간신히 바늘귀에 꿰어놓는다
누구를 닮은 것일까
어떻게' 꽃 한 송이로 피어 있을까
나는
-전문(p. 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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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재봉틀
밤새워 재봉틀 돌리는 소리가
미닫이문 사이
귓바퀴에 감겨 이명처럼
울린다 재봉의 박음질이 만들어 낸 길을
타박타박 걷고 있다
반평생 그 소리 듣고 있다
비 오는 날 남새 텃밭도 작파하시고
어머니 재봉틀 앞에 경經 읽듯
온 맘 온 힘을 보태 한 땀 한 땀
삼베조각보자기 요호청 베개모 무시로 길을 만든다
키도 살도 뼈도 조금씩 무너져 주저앉고 마는
여자의 한 생애가
빗소리 재봉틀 바퀴살에 실려 돌아간다
내 꿈길에도 재봉틀 밟는 소리 들린다
지구를 몇 바퀴 돌리고도 남을 어머니가 만든
박음질 그 길
구석진 세상 곳곳의 길 위에 나는 서 있다
장승처럼 때로는 천불천탑처럼
-전문(p. 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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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선집 『알맞은 그늘이 내가 될 때』에서/ 2024. 3. 29. <서정시학> 펴냄
* 한이나/ 충북 청주 출생, 1994년『현대시학』에 작품 발표로 활동 시작, 시집『물빛 식탁』『플로리안 카페에서 쓴 편지』『유리 자화상』『첩첩단풍 속』『능엄경 밖으로 사흘 가출』『귀여리 시집』『가끔은 조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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