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메르 외 1편
김건희
앞섶 단 추 하나 뚝 떨어져
신전 계단 아래로 굴러간다
그의 과거를 알고 싶거든
점토판 쐐기 문자를 조금씩 더듬어 봐
한곳에 머물기를 거부한 단추, 이해하는 순간
진흙에 꽂힌 문자는
표창이 되어 네 가슴에 꽂히게 될지도 몰라
신전에 갖다 바친 양 일곱 마리
움푹해진 눈동자로 뛰어나올지도 몰라
진흙 바닥을 막대기로 긁다
죽은 술사가 네 머리에 독약을 뿌리더라도
벌떡 일어나지 마
기도의 방으로 들어가
함부로 신들을 불러내지는 마
캄캄해지는 눈앞의 순간이
성벽처럼 가로막을 떄
당당히 일어나 휘파람을 불어 봐
-전문(p. 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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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리 경전
저무는 숲에 갔다가 탁! 탁!
도토리에게 얻어맞았다
나를 치고 동화사 돌계단을 굴러 내려간다
놀라 눈 뜬 다람쥐에게 남기는 화두
대웅전 용마루 마주 보며 백 년쯤은 살았으니
그도 나름 깨달았겠다
발아래 관 자리 하나쯤 봐 두고
애 끓이던 열매 하나둘 떠나보내고 있다
눈물 섞어 묵을 쑤어도 그만인 도토리
흔들리던 허공을 다람쥐가 끌고 가서
불혹 넘긴 내가 애꿎게도 아프다
큰 나무 그늘에서 멀리 떨어지라는 스님의 설법
타임머신을 숨긴 어린나무가 받아 적는다
여시아문 꽃살문도 흔들린다
-전문(p.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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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오렌지 낯선 별에 던져진다면』에서/ 2024. 3. 11. <상상인> 펴냄
* 김건희/ 2018년 『미당문학』신인작품상 수상으로 등단, 시집 『두근두근 캥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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