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가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
<향가시회>
박수빈/ 시인 · 문학평론가
만물이 급변하는 요즘, 혼란스러울수록 맑은 의식과 정체성을 찾게 된다. 예술을 통하여 인간은 정신의 고귀함을 일깨워 왔다. 나무가 그렇듯이 뿌리가 튼실하면 세태라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나라 고유 시가의 뿌리는 향가鄕歌다. 한자의 음音과 훈訓을 빌려서 향찰鄕札로 표기했으며, 진성여왕 때 대구 화상과 각간 위홍이 편찬한 『삼대목』은 향가 전문 사화집이다.
향가라는 명명에는 당시唐詩가 아닌 우리나라를 강조한 '국가國歌'로 주체적인 의지가 있다. 형식은 초기의 4구체에서 발전된 8구체, 삼국 통일기에 정형화된 10구체가 있다. 낙구 첫머리에 '아야阿也' 영탄구는 훗날 시조 형식에 영향을 주었다. 전승된 향가를 통해 우리는 미학적이며 서정적인 감동을 얻는다. 그래서 문학적 항구성은 어느 시대이든 전해지면 그 시대의 것으로 변주되어 생명력을 지닌다.
고영섭 시인은 『삼국유사』에 담긴 향가를 분석했고, 2017년에 시집 『사랑의 지도 : 시로 쓰는 삼대목』을 펴냈으며, 현재 <향가시회>를 이끌고 있다. 2017년 3월에 결성한 <향가시회> 동인은 2018년부터 매년 동인지를 발행하여 2023년에 제6집까지 펴내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신라 천년의 역사를 뛰어넘어 향가를 부활하고 옛것을 본받아 현대적으로 새롭게 재현하는 결실을 이루었다. 선대의 지혜 유산을 존중하면서 현재에 이어 미래로 나아가는 창작정신은 통시적인 의미가 크다.
현대시를 짧게 쓰거나 축약했을 경우에 향가의 형식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향가시회> 동인의 결성과 의욕적인 활동은 고무적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4구체, 8구체, 10구체의 짧은 시운동은 서정시가 갖는 장르적 특성인 동일화의 원리와 더불어 순간성과 압축성에 부합한다. 시적 긴장을 지닌 짧은 시는 독자에게 전달하기에도 용이하다. 또한 현대향가의 형식이 갖는 공간구조의 특성은 장시나 산문시가 성취하지 못하는 면으로 일목요연하다. 이런 구성상의 장점을 널리 알리면 독자와 소통의 폭이 커질 것이다. 전통향가에서 주술 기능의 치병과 통치 기능의 치리 정신을 승계하여 현대향가로 현현은 기술문명 위주의 이 시대에 고단한 삶의 위안이 된다. 시간의 연속성 관점에서 거시적으로 보면 일상의 근심은 사소한 것이 된다. 향가의 맥은 세상사에 급급한 어리석은 마음을 경계하고 인생의 무상한 본질로부터 성숙한 의식을 전한다.
<향가시회> 활동은 짧은 시 권장 운동으로 시문학을 어렵게 느끼는 일반인을 시의 곁으로 다가오게 한다. 일본의 하이쿠가 세계적인 장르가 된 데는 짧으면서 촌철살인이 매력이었듯이, 향가 역시 아포리즘 요소를 읊기에 적합하다. 뿐만 아니라 14행으로 된 서양의 소네트보다 짧아서 노래로 부르기도 좋다. 함축성과 여운의 묘미로 향가 정신이 적극적으로 독자에게 다가갔으면 한다. <향가시회> 동인의 활약이 상생 공간을 만드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이들의 작품들을 가까이 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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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간호『서울문학광장』 2024-1월(1)호 <동인 순례 · 1> 에서
* 박수빈/ 2004년 시집『달콤한 독』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청동울음』『비록 구름의 시간』, 평론집『스프링 시학』『다양성의 시』, 논저『반복과 변주의 시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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