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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시대는 갔는가?(부분)/ 구모룡

검지 정숙자 2024. 3. 5. 02:29

 

    시의 시대는 갔는가?(부분)

 

     구모룡/ 문학평론가

 

 

  시의 위상이 궁금하다. 문학 내의 위계가 아니라 한 사회 안에서 차지하는 문화적 비중 말이다. 아울러 시인의 위치도 의문이 간다. 역시 문학장 내부의 위치가 아니라 사회적 자기를 알고 싶다. 물론 이와 같은 사회학적 물음에 쉽게 답이 주어질 리 없다. 대중을 상대로 시와 시인에 대한 인식을 조사하는 질적이고 양적인 작업이 필요하다. 단지 오늘의 시를 누가 얼마나 읽느냐는 독자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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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 사유화는 개성을 상품으로 받아들이는 자본주의 시장 원리와 무연하지 않다. 물론 시는 강력하게 반자본주의를 천명하면서 감각의 특이성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몇몇 노동 시인과 대안을 지향하는 생태 시인을 제외하면 시적인 것을 자기 지시적인 언어로 회수하는 탈정치적인 경향이 일반적인 흐름이다. 한동안 활발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미래파 현상이 그렇듯이 새로움이라는 혁신이 지니는 한계는 외부의 경험적 맥락을 놓칠 때 발생한다. 새로움 그 자체가 경험을 대체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주체와 세계와 언어의 세 가지 시적 벡터 가운데 세계가 약화하는 현상이 현저하다. 경험적 현실보다 주체의 감각이 앞서고 세계보다 상상적 가공이 빈번하다. 물론 경험만으로 시가 되지 않을뿐더러 경험이라고 하더라도 어떠한 경험이냐는 의미가 중요하다. 기표의 가벼운 유희만큼 기의의 앙상한 무게도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기표와 기의 어느 일방이 아니라 시적 의미를 형성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과정 시학은 김수영의 온몸 시학처럼 주체가 세계와 만나 형성하는 경험 지평을 언어적 방법으로 살아가는 수행인데, 이를 통하여 시의 사유화 현상을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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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히 현금은 시의 시대는 아니다. 이는 시인의 양적 팽창과 반비례하는 독자의 양적 축소를 의미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시인이 시를 통하여 어떠한 세계를 형성하는가의 문제이다. 여기서 미셸 콜로가 현상학에서 빌려온 지평이라는 개념이 유익하다. 이는 단순한 주체가 아니라 세계와의 관계, 주체의 성립 그리고 언어의 실행을, 동시에 관여하는 구조인데, 이와 같은 지평을 확대하는 과정이 종요롭다.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의 비유를 빌려 말하자면 오늘낭의 시는 서치라이트 불빛에 사라지고 있는 반딧불이의 잔존과 같다. 따라서 시가 1980년대에 상응하는 저항과 의미를 발산하기 힘들다. 오로지 위부에 대한 저항으로 시의 연대를 말하지 않는다. 이보다 적극적으로 자본주의적 사유화의 덫을 벗어나는 일이 요구된다. 개성과 새로움을 전시하기보다 시적 과정에 충실하면서 자기의 지평을 열어가는 성실한 과정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과정 시학을 견지한 시인의 대화와 만남이 어쩌면 우리가 새롭게 열어갈 시의 나라가 아닐까 한다. (p. 162 * 167 *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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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로여는세상』 2022-봄(81)호 <비평가의 시선> 에서

  * 구모룡/ 1982⟪조선일보⟫ 평론 부문 당선, 평론집『구체적 삶과 형성기의 문학』『제유의 시학』『감성과 윤리』『폐허의 푸른빛』등 다수